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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o Sep 15. 2020

노숙자를 이송하게 되는 건에 대하여

병원 찾아 삼만리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

(요한복음 13장 34절)


ㅡㅡㅡ


그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처음에는 본인이 아프다고 공중전화로 신고했고

두 번째는 지나가던 사람에게 신고를 해달라고 했고

세 번째는 순찰 중인 경찰에 의해 공동대응 요청이 들어왔다.


수차례의 언어폭력에 노출된 채로 현장활동을 마치고

마음을 추스르고 귀소 했을 때 날 기다리고 있는 건 민원이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노숙자이지만 사람에게는 인권이 있는 거 아니냐는 항의 전화.


나는 네 번째 출동을 나갔고 단순 주취자를 왜 데려왔냐고 화를 내는

의료진에게 사정사정하며 환자를 인계하고서야 귀소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뱉어내듯 글을 쓴다.


교통 거점 역할을 하는 기차역 부근에는 노숙자들이 많다.

서울역, 영등포역, 청량리역, 용산역 같은 곳들.

노숙자를 위한 자활시설이나 급식소 또한 역 주변에 몰려있기에

그들은 역 주변에서 숙식하며 생활한다.


구걸을 하기도 하며 노상에서 술을 마시고 드러눕기도 한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사람이 쓰러졌다고 신고를 하기도 한다.

지극히 안정된 활력징후에다가 외상도 없다.

응급환자가 아니며 이송거절 사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보다 먼저 들것에 태워 이송하기 바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 환자를 버리고 갔다고 현장에서 경찰/신고자와 실랑이하게 된다

2. 어차피 재신고가 들어올 예정이다. 어쨌든 쓰러져 있으니까..

3. 무려 단순 주취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있다

http://www.medicopharm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321


4.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는 인도주의적 마인드


간혹 단순 주취자라고 판단되어 이송 안 하고 돌아왔다가

추후 뇌출혈로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출동한 구급대원이 모조리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다.


제천 화재나 마포대교 투신사건처럼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상황실장이 직위해제되거나

1분 만에 출동을 내렸음에도 부적절한 언사를 했다고 마녀사냥당하는 판국에

이송을 안 해줘서 뇌출혈 환자를 방치했다? 오 마이 갓.


사실 어떻게든 이송하고 깔끔히 끝내려는 이유가 있다.

이송 거절하고 복귀해도 어차피 출동이 예정되어 있다는 거.

기왕 나간 거, 확실하게 끝내야 한다.


하지만 2020년의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건 무엇인가.


코.

  로.

     나.


대부분의 국립병원들이 코로나 전담으로 바뀌었고

노숙자를 받아주는 복지병동도 없어졌다.

그렇다고 노숙자 관련 출동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대학병원 응급실이나 일반병원에서는 노숙자를 받아주지 않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느냐.


10군데의 병원에 전화를 하고 5군데의 병원에 뺑뺑이 돌다가 결국 노숙자는 술이 깨서

동료(?)들이 기다리는 기차역 대합실로 돌아가 다시금 술판을 벌였다.


진이 다 빠지더라.

이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누가 보느냐.

내가 노숙자를 데리고 팔도유람하고 있는 사이에

나의 관내에는 119 신고가 다수 들어왔고 멀리 떨어진 타 센터의 구급차가 출동하였다.

그중에는 의식이 저하된 응급환자도 있었다.


빈민구제활동은 결국 '실질임금의 하락'을 야기하며
성실하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
타인에게 의존하는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사회에 의존하는 제도 때문에
가난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어지는 것이 큰 문제다.


맬서스의 인구론에 나오는 말인데

극히 공감하는 바이다.

한국의 수많은 종교단체의 자선활동과

과하다 싶은 복지정책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대낮의 기차역에서 술판을 벌이며 택시 부르듯 119구급차를 타고 다닐 수 있었을까.


좋은 마음으로 생각하려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성인군자도 아니고 박애를 추구하는 선한 인간도 아니다.


지금의 상황은 뭔가 크게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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