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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o Sep 07. 2020

민원은 어떻게 공무원을 아프게 하는가


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452800

특정집단의 사실이 아닌 민원이 결국 젊은 경찰관을

자살로 이끌었다



https://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88318

민원으로 인한 고통은 대부분의 공무원이 마찬가지이다



 구급업무 특성상 경찰과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을 현장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나의 경우 이 분들과 사이가 썩 좋지 않다. 경찰은 야간에 침대에서 잠을 자는 소방관 운운하며 청와대 청원을 올림으로써 동종업계 종사자(?)에 대한 존중이 없음을 인증하였고, 거의 모든 주취자 발생 현장이나 이송을 원치 않는 작은 부상에도 공동대응을 요청한다.


 사회복지직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민원인의 거동불가와 재산상황을 고려하여 지역 응급의료기관 이상의 응급실만 가게 되어있는 119구급차에게 동네병원 혹은 아주 먼 거리의 복지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 사람 잘 못 되면 책임질 거냐는 협박과 함께. 더하여 저번에는 해줬는데 오늘은 왜 안 해주냐고 환자 앞에서 따지면 답이 없다. 이 모든 걸 해드릴 수밖에. 왜냐하면 나는 민원이 무섭기 때문이다.


 언젠가 파출소에 다리를 다친 환자가 있다고 신고가 들어왔다. 출동한 바 무려 다리에 직경 2cm 내외의 찰과상을 입은 만취자를 치료해달란다. 초등학생이 봐도 빨간약 바르고 후시딘 바르면 끝날 상처였다. 바닥에 뱉어진 기포가 사라지지 않은 가래침들과 의자 팔걸이에 수갑으로 묶여진 환자의 손목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해 주었다. 나는 경찰에게 물었다. 이 파출소에는 가정집에도 구비되어 있는 구급함도 없느냐고. 담당으로 보이는 경찰관은 한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저 사람이 집에 가서 헹여라도 민원이라도 걸면

내가 구급대원 불러다가 치료라도 해준 걸로 해야... 그나마 욕 좀 덜 먹지 않겠냐고...



이 대답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아... 경찰이나 소방이나 똑같구나.




 국민은 민원행정을 통해 행정기관과 직접 접촉하여 그 처리과정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게 됨. 따라서 민원행정은 국민에 대한 편의와 봉사를 도모하려는 민주행정에 있어 중요하게 평가받음 또한 국가의 기능이 19세기의 자유방임형 경찰국가에서 21세기의 복지국가·행정서비스 국가로 변모됨에 따라 국가는 국민생활 전반에 대하여 관여하게 되고 이에 따라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민원행정은 “양질의 행정서비스 제공”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날로 더해 간다.



 민원 처리에 관한 법령 서두에 있는 글인데 유독 세 단어에 눈길이 간다.


 편의. 봉사. 서비스.


 그리고 공직 특유의 무사안일주의와 승진 제일주의와 맞물려 현재 대한민국에서 국민은 민원이라는 무기를 소지한 슈퍼갑이다. 제복 공무원? 민원응대 공무원? 아마도 갑을병정의 병과 정 사이쯤 될 것이다. 구급대원의 경우는 비응급환자에 대해 이송을 거절할 수 있다. 응급환자를 위한 구급차량을 운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법은 ‘... 할 수 있다’로 끝나는 법이다. 구급대원에게 재량이 부여되며 이송거절을 할 수도 있는 거지 하라는 뜻이 아니다. 신고가 들어오면 어지럽다고 호소하는 ‘걷는’ 환자를 태우고 평소 다녔다는 대학병원에 출퇴근 시간을 뚫고 이송을 시작한다. 관할 지역의 인구 30,000명의 응급상황을 대비하는 구급차는 그렇게 관내를 2시간가량 비우게 된다. 어쩔 수 없다. 민원이 들어오면 시비를 가리기 이전에 이미 내가 돌아버리고, 조직이 뒤집어지기 때문이다.  


 병원 가려고 신고했는데 본인의 요청이 거절당하게 되면 민원인은 불만을 품고 곧잘 항의 전화나 민원으로 연결된다. 민원이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 - 경위서를 써야 하고, 불친절한 구급대원으로 낙인찍혀 어디를 가더라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때로는 취하해달라고 마음에도 없는 사죄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친절의 의무 위반으로 징계 주는 곳도 있다더라.


 민원을 몇 번 받아본 구급대원은 결국 민원인의 요구대로 구급차를 운용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나온 통계가 가장 구급차가 많이 출동하는 시각 –월요일 아침 8시-이다. 대학병원 외래가 열리는 월요일 아침 8시에 맞춰서 옷을 차려입고 신고를 하는 민원인들.  


https://news.joins.com/article/23677138


 특정 부동산 카페에서 구청에 릴레이 민원이라는 걸 한다고 본 적이 있다. 본인들의 부동산 이익을 위해 같은 내용의 민원을 동시다발적으로 넣는 것이다. 이런 영혼없는(?) 민원에는 구청에서도 복사 붙여 넣기 답변서를 제공한다. 이런 걸 보며 일반직들이 참 부러웠다. 명확한 지침이 있거나 지침이 두루뭉술하여 현장 실무자의 재량에 맡기는 케이스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서. 민원이 들어왔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휘청댈 수밖에 없는 보직들. 경찰. 소방관.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민원응대 부서의 공무원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민원과 과중한 업무, 그리고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남의 떡을 지켜보며 나는 속으로 곯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디 나뿐일까? 전국 대부분의 구급대원이 비슷한 상황일 텐데. 요새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에 의료파업에 역대급 업무 스트레스를 자랑한다. 이런 상황에 아주 슬픈 뉴스가 하나 전해진다. 주취자의 폭언과 주먹질에 대응하여 폭행을 저질러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아 중징계를 받은 소방관의 뉴스가. 우발적 감정이라고만 하기에는, 나를 비롯해 나의 동료들은 너무나 힘들고 괴롭다.


https://www.yna.co.kr/view/AKR2020090415320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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