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하셨습니까? 형님!”
“어 그래. 장수야. 담배 있냐?”
“네. 형님!”
장수는 허리를 숙이고 우현에게 양손으로 담뱃불을 붙여 주었다.
타인이 보기에 나이 차이도 크게 나 보이지 않는데, 과한 예절 같아 보이기도 했다.
담뱃불을 받은 우현은 장수의 보컬 선생님이었다.
2년째 보컬 레슨으로 이어진 관계였고, 최장 레슨생 답게 수업이 없더라도 사적으로도 만나는 사이였다.
“형님. 제가 저번 주에 오디션 본 거 확인했은데 떨어졌지 말입니다…”
“아 그래? 더 잘하자.”
“예 형님. 그래서 말입니다만, 저도 이제 나이도 이십 대 후반이고 이 길이 제 길이 아닌 거 같기도 해서 말입니다…”
“어 허! 장수야. 너 가수 못되면 노래 안 부를 거냐?”
“그건 아닙니다…형님.”
“그래 인마. 영국가수 폴 포츠 알지? 그 사람 휴대폰 팔다가 오디션 봐서 국민 가수 됐다. 너도 인마 단발성으로 승부 보려고 하지 말고 길게 봐야지.”
사실 장수는 그날 레슨을 관두겠다고 말하려 했다.
지금까지 편의점 야간 알바로 생활비와 레슨비를 마련해 왔지만 점장이 야간 영업을 안 하기로 하면서 영수의 돈벌이가 사라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말하지 못하고, 그저 씁쓸히 연습실을 나왔다.
***
늦은 저녁, 우현의 원룸에서 게임 소리가 창문 틈새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야 인마! 니가 뒤를 봐줘야지. 졸라 허무하게 뒤졌네.”
그가 헤드셋으로 게임에 접속해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아 쏘리. 우현이 너 근데 그래픽카드 바꾼다고 하지 않았음?”
“아 바꾸려고 했지. 근데 이번 달에 두 명이나 레슨을 관둬서 못 삼.”
“아 그래? 저번에 술자리에 니가 부른 레슨생 있잖아. 개 이름이 뭐더라? 하여튼 졸라 웃긴 놈이던데.”
“아 장수? 개가 내 밥줄이긴 하지. 생각해 보니 며칠 전에 레슨 관두겠다는 식으로 말하길래 좆되는줄 알았다. 개는 적어도 1년 정도는 더 빨아 먹어야 되는데.”
“미친 양아치 새끼. 지 레슨생한테 빨아 먹는단다.”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누군 땅 파서 장사하냐? 내가 대학교에서 배운 거랑 개인적으로 쌓은 노하우들 다 알려주잖아.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말이지, 나 때는 대학교 외에 이렇게 개인 레슨하는 선생들도 별로 없었다.”
“알겠다. 닥치고 담판에는 좀 이겨보자.”
우현의 친구는 술자리에서 우스꽝스럽게 형님들 시중을 들던 장수의 모습이 생각났지만, 이내 게임 화면에 집중하면서 그 모습은 사라졌다.
***
선불로 냈던 분량의 마지막 레슨 날, 연습실에 들어가기 전 장수는 결심했다.
‘형님한테 미안하지만, 이제 레슨비를 낼 형편이 못 된다. 당장 새 알바를 한다고 해도 한 달 뒤에나 월급을 받을 테니. 이제는 혼자서 해봐야지…’
장수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레슨을 받았다.
한 시간 반의 수업 동안 50분 정도는 보컬 수업이었지만, 나머지 시간은 그냥 잡답 위주로 흘러갔다.
장수는 그 잡담의 시간도 아깝다고 느끼진 않았다.
이분은 나의 스승님이고, 뭐가 됐든 다 경험이 된다고 생각했다.
수업이 끝날 즈음 장수가 용기를 냈다.
“형님. 저번에 말했던 거 말입니다…”
“뭐였지?”
“네. 제가 이제 수업하기 힘들 것 같아서 말씀 드렸지 말입니다.”
“아 그랬나? 너 수업 계속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형님. 제가 하던 야간 알바가 없어져서 백수가 됐습니다. 다음 레슨비 낼 돈도 없고, 이제 그냥 혼자서 해보려고 생각했습니다…”
“어허! 장수야 너 일주일 놀면 그거 한 달 되고, 결국 일 년, 이년 지나다 결국 음악 접게 된다. 너 그거 사소한 거 같지? 내가 그렇게 된 애들 한두 명 본줄 아냐?”
“형님. 먼 미래까진 제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당장 저도 월세랑 핸드폰비 낼 돈은 있어야죠.”
“장수야. 너 돈 빌릴 데 없냐? 그래도 수업은 계속해야 되는 게 맞는 거 같다. 아직 너 고쳐야 할 거 많은 거 알잖아.”
“예 형님. 아쉽지만 여기까지만 해야 할거 같습니다. 돈 빌릴 데도 없고요. 죄송합니다.”
“장수야. 다시 생각해 봐라. 아님 내가 이 주 정도 레슨비를 늦게 받아도 되니까. 수업은 계속 해보는 게 어떻겠냐?”
그렇게 수업 종료 시각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지만, 도돌이표 대화는 계속됐다.
그만두겠다는 장수와 어떻게든 수업을 연장하려는 우현의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그때 마침 연습실 현관에 지나가다 들른 우현의 게임 친구가 서 있었다.
그는 들어가지 않고 십 분 정도 둘의 대화를 듣기만 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 맴돌고 있었다.
‘장수야. 수업 연장해라. 그래야 나도 우현이한테 밥이라도 한 끼 얻어먹지.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