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는 더했다.”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물론 전쟁을 겪은 세대라던가 타임머신을 타고 신분제 시대에 살았던 하층민을 만나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느 정도 납득은 가겠지만 역시나 별로다.
이 말의 원류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결국 돌도끼를 쓰며 채집 수렵을 하던 원시인 외에는 전부 아가리를 닥쳐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말을 자기도 모르게 쓴다.
그 말은 결국 “나 고생했으니 알아줘. 위로해 줘. 관심 가져줘.”의 다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에둘러 표현하는 것일까?
아마도 낯 간지럽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과 인정을 호소하는 것이 나쁜 것일까?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 때는 더했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불쾌하다.
내 심성이 배배 꼬였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건 마치 멀쩡한 사람이 세 걸음 걸은 다음 “저 운동했어요. 여러분!”이라고 주변에 외치는 느낌이다.
다시 말하면 과하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위로받고자 하는 욕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은 왜 과하게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을까?
그건 아무래도 적게 노력을 들이고 보상은 많이 받고 싶은 인간의 기본 심리일 것이다.
***
이곳은 led 조명이 세상을 비추고, 퀴퀴한 곰팡내가 친숙한 곳이다.
대기 오염으로 피신한 인류가 만들어낸 지하 도시.
웃기게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나 때는 더했다.”를 말하는 사람과 “나 때는 덜했다.”를 말하는 사람이 나눠져 있다.
우리 할머니는 “나 때는 덜했다.” 아니 “나 때는 참 좋았다.”라고 말씀하신다.
“장훈아. 나 때는 육지에 차가 다니고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면서 걸을 수도 있고 참 좋았단다.”
하지만 하늘을 보지 못한 옆집 아저씨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나 때는 정말 지옥이었지. 아직 정부도 세워지지 않았고, 온갖 범죄에 먹을 것도 없어서 난리였지.”
나는 하늘을 본 적이 없기에 할머니처럼 나 때는 좋았더라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옆집 아저씨처럼 나 때는 더 힘들었다고 에둘러 호소하는 사람이 되겠지.
미래에 누군가 내가 끄적인 이 글을 본다면 묻고 싶다.
아니, 묻지 않으련다. 누구나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건 국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