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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앙요 Jul 11. 2022

슬픔

(15)

재요에게.


이젠 뭐 식당도 제품도 많이 생기고, 웬만한 화장품에 비건 마크는 흔하고 비거니즘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지만,

채식 6년 차, 비건 지향 5년 차인데도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일상에서 나는 이해와 배려의 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너무 외롭게 만들더라.

그들과 보내는 시간은

나를 이해하고 배려해주니 고마워야 되는 것인 동시에 우리의 다름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니까.


오히려 낯선 사람들,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덤덤해졌고 이들은 아직 시선을 넓히지 않는구나, 그럴 생각이 없구나, 하며 적당히 넘어갈 수라도 있는데

내가 아끼는 사람들한테는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기다리기.  

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는 날이 오기를, 더 이상 내가 특별하지 않아 지는 때가 오기를.


하지만, 그 기다림은 기약 없이 오래 이어지고 있고 나를 둘러싼 환경은 더디게 변해.

아니, 어쩌면 많은 것들이 천천히 달라지고는 있지만,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벽이 너무 크고 견고하다 보니 별로 감흥이 없는 것일 테야.

그래서 자꾸 나에게서 나에게로 슬픔이 흘러.

가장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인 비건으로 살고 있는데 정작 그런 나를 스스로 이상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현실이 너무나도 슬퍼.

이 관계, 이 세상에서 이상한 건 나니까 기대하지 말자고 다짐해야만 조금 덜 슬플 것 같다가도, 그렇게 나의 이상함을 탓하다 보면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의 늪에 빠져서 더 큰 슬픔 속에 잠겨버려.

매일매일 마주하는 상황 안에서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아무렇지 않게, 편안하게 살아갈 수 없다 보니

나는 그냥 없어도 되는 존재인 것 같이 느끼니까.


소수자로서, 마치 이 사회가 원하지 않는,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려 하지 않는 존재 같다고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필연적인 슬픔 앞에 끊임없이 무너지면서도 아등바등 힘을 내어 연대하며 투쟁하는 삶일까.

어떻게 힘을 내고 누구랑 연대하며 무엇을 위해 투쟁할 수 있을까.


2022.07.10.

기요.


+ 다음에는 ‘거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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