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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앙요 Aug 09. 2022

당연하지 않음

(19)

재요에게.


지난번에 적어준 글 좋더라. 어렴풋하게 느끼던 부분을 너의 언어로 보는 게 반가웠고.


너의 짐작대로, 내가 당연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된 과정은 너와 조금은 다른 것 같아. 오랫동안 나는 '당연한' 사람에 가까웠어. 적당히 평범하고 적당히 주목받고, 적당히 타고났고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고통받고.


근데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경험해온 것들은 그저 운이 좋았거나, 누군가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 뿐 마냥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는 걸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어. 기본적으로 나는 꽤나 반항적이고, 독립심이 강해서 더 그랬을 수 있어. '정말 그런가? 원래 그런 건가? 꼭 그래야만 하는 건가?'라는 태도를 항상 품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럼에도 여전히 희미하게 조각나 있던, 당연함과 당연하지 않음에 대한 감각을 강한 의지로 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이미 여러 번 이야기한 적 있듯이) 교환학생과 꾸마야. 22살 가을에 나를 완전히 무너트리고 23살 가을에 차곡차곡 나를 다시 쌓아 올리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거든. 당연한 줄 알았던 것이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지할수록, 그러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했어. 이 세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삶, 나에게 주어졌던 삶 말고, '내가 원하는' 삶을 생각해보게 되었어.


그렇게 나를 구석구석 뜯어보니까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은 지금까지는 나에게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에 가깝더라고. 각각의 존재가 나름의 방식으로, 충분히 존중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때 나는 기쁘고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니, 나의 뛰어남을 입증하고 권력으로부터 인정받기를 갈망하고, 성적과 학력, 직장과 연봉, 성별과 외모를 기준으로 평가되며 살고 싶지 않았어. 그렇게 점점 당연하지 않은 삶을 살기 시작한 것 같아.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내 주변의 존재들 중에서도 특히 '안 당연한' 삶에 더 집중하게 된 건, '나의 안 당연함'도 괜찮은 세상이길 바랐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너처럼 나도, 꽤 '안 당연한'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고 싶은데, 그러려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혹은 이 세상이 당연하지 않다는 이유로 지우려는 존재들을 어떻게 해서든 붙들어 매야 했어. 나를 둘러싼 이들이 괜찮아야 나도 괜찮을 수 있는 세상일 거라는 믿음으로, 반대로 내가 살아남아야만 그들도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연결감 안에서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것 같아.


어렵고 힘들지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테니, 후회는 없어. 지칠 때도 많지만, 너의 말처럼 당연해하지 않기 때문에 사방으로 퍼질  있는 우리의 가능성을 사랑해. 당연하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훨씬 다채롭고 아름다우니까, 앞으로도 우리의 ' 당연한' 삶이 계속되면 좋겠다. 당연하지 않은 삶이 주변에 자꾸 많아지면 정말 좋겠다.


하루 늦은, 2022.08.08.

기요.


다음 주에는 '잠'에 대해 적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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