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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앙요 Oct 03. 2022

양말

(27)

재요에게.


흰 무지 양말만 신던 나는, 언제부턴가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의 양말을 찾아 신기 시작했어. 양말을 좋아하던 친구와 친해지고 나서였는데, 누군가의 발목으로 드러나는 양말이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거든.


처음에는 귀여워서 매력을 느꼈다면, 조금 더 나의 의지대로 양말을 골라 신기 시작하면서 느낀 건, 가성비가 좋다는 거였어. 상하의는 색이 튀거나 디자인이 화려하면 매치해서 입기 어려워서 그에 맞는 옷들을 더 사야 한다거나, 금방 질려서 손이 잘 안 가기도 했거든. 근데 양말은 내 마음대로 신어도 포인트는 되더라도 내 옷차림 전체에 영향을 주지는 않더라고. 그리고 보통 7~8천 원대 정도면 충분히 마음에 드는 양말 한 켤레를 살 수 있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되지도 않고.


양말이 나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나니 집을 나서기 전 하루를 함께 보낼 양말을 고르는 재미가 쏠쏠했어. 다른 옷들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도 양말 칸은 색깔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내가 양말에 애정을 담을수록, 주변 사람들도 많은 관심을 보여줬어. 단순히 그 양말의 디자인이 아니라 이 양말을 신은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말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지.


하지만 내가 독립을, 정확히는 두 집 살림(?)을 하게 되면서부터 내 짐이 두 곳으로 나눠지게 되었고 그렇게 지금 나의 양말 인생은 조금 달라졌어. 공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종종 내 양말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신는 엄마의 재미를 통째로 빼앗기도 싫었기 때문에 양말을 나눠서 보관하고 있거든. 그래서 오늘 내가 신고 싶은 양말이 있어도 신지 못할 때도 있고, 그렇다고 전처럼 양말을 적극적으로 사고 있지도 않아. 한 마디로 양말을 대하는 나의 마음도, 나를 둘러싼 상황도 달라진 거지.


생각해보면 난 지금 독립의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아. 공간, 시간, 돈처럼 나에게 주어진 것들,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들 안에서 어떻게, 얼마나 나를 챙기고 나의 개성을 드러낼지 그 선택의 기로에 있는 것 아닐까 싶어. 어쩌면 이제 양말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나를 표현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해. 그게 무엇일지는 아마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분명한 건 그게 뭐든지, 물질적인 것이든 보이지 않든 나는 그것을 원한다는 거야. 그런 나의 고민과 선택이 모여 나를 구성할 테니 공들여 찾고 애를 써서 지켜볼 거야.


너도 너가 선택한, 너를 드러내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을 텐데, 그중에서도 다음에는 ’색깔‘에 대해 적어 줘:)


2022.10.02.

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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