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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요에게.
어제 오후부터 오늘까지,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해 브런치 접속이 되지 않고 있어. 지난 글에서 너가 뭔가 홍삼처럼 생뚱맞은 글감을 줬던 것 같은데 우리 둘 다 기억해내지 못하는군. 이번엔 내가 소재를 정해서 쓰고 너가 준 건 다음에 쓸게.
가스레인지 | 요리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아직도 가스레인지 불과 친해지는 편이야. 무조건 세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늘 중불이면 아쉽고, 때로는 강불로 휘리릭- 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꼭 약한 불을 써야 하고. 불을 잘 다루는 사람이 요리를 잘할 수 있다(?)고 언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이렇게 적어보니 정말 맞는 거 같아. 재료와 요리에 어울리는 불을 알고 활용한다는 건,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건 어렵지만 멋있는 일이야 정말.
성냥과 라이터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성냥과 라이터로 불을 켜는 것을 무서워했어. 해본 적 없었기 때문에 낯설었고, 써보지 않은 손과 손가락의 힘을 쓰는 게 어색했어. 하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그 작은 물건으로 순식간에 불을 켤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해. 물론 바람이 많이 불 때는 불을 붙이기 너무 어렵지만, 성냥이든 라이터든 작아도 불은 똑같이 뜨겁고, 언제든 큰 불이 될 수 있으니까.
폭죽 | 이제는 즐기지 않게 된 불꽃. 어렸을 때는 내 손으로 들거나 하늘에서 흐드러진 모습을 보면서 그 반짝임을 눈에 담았던 것 같아. 근데 쓰레기 문제도 심각할뿐더러 그 빛과 소리가 주변 존재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될수록 마음이 안 좋아. 바닷가에서 폭죽을 쓰는 건 불법이라는데 왜 판매가 되는지, 그리고 바다에서는 안 되는데 한강에서는 왜 그렇게 터트려도 되는지 의아하기도 해. 그리고 얼마 전 너가 이야기해줘서 결국 폭죽은 화약 무기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고 나니 어느 곳에서는 그것 때문에 죽임을 당할 때 다른 곳에서는 그 덕분에 웃고 있다는 상황이 어렵기도 했어.
그리고 화재 | 수년 전 건물 화재로 인해 지인의 가족이 돌아가셨고 몇 년 전에는 집 앞 시장에서 불이 나서 방 창문으로 시커먼 연기가 보였던 적도 있어. 얼마 전에는 동해안 일대에 큰 산불이 있었고. 불에 의한 재난을 화재라고 하던데 불 자체의 힘이 크고 무서운 것도 있지만, 자연적으로 발생한 경우보다 인간에 의해서 불이 나는 일이 훨씬 많다 보니 그 책임이 무거운 것 같아. 게다가 데이터센터 화재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의 불편함으로나마 체감하지만, 나와 큰 관련이 없다고 여겨지는 대부분의 화재는 잘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관심을 갖기 어려우니까. 카카오의 서비스는 복구되었지만, 아직 복구되지 못했거나 복구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나 영영 복구되지 못할 것들이 많겠지.
불, 하니 떠오른 몇 가지를 적어봤어. 다음에는 '나무'에 대해 글을 써 줘!
2022.10.17.
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