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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앙요 Oct 24. 2022

나무

(30)

기요에게.


네가 써준 글처럼, 내게도 나무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져. 상황 따라서, 표현 따라서, 관점 따라서.


우선 제일 먼저 떠오른 장면은 오크향 나는 위스키야. 최근 내가 '라프로익'이라는 위스키에 빠지면서 네게 한참 라프로익 얘기만 한 적 있지. 결국 우리는 함께 가자주류에 가서 바틀을 샀고. 그 오크향은 결국 나무향이니까 제일 먼저 떠올랐나 봐. 어쩌면 오크향을 좋아하는 게 세월의 향기를 머금은 나무의 숨결을 마시고 싶었던 것 아닐까. 다행히 최근에는 '빛 32도'를 발견해서 좀 더 쉽고 저렴하게 오크향을 만끽하고 있지만, 라프로익이던 빛이던 술 한 모금에 나무의 아름다움을 품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게 뭐가 있으랴!


두 번째로 떠오른 장면은 '트리 허깅'이야. 우리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함께 태안에 놀러 갔었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떠났던 곳. 생각만큼 아무것도 없었고, 서로가 먹을 것에 진심인걸 확실히 알게 된 날. 그 2박 3일간의 시간 동안 가장 좋았던 순간은 네가 나무와 아무 말 없이 껴안았을 때야. '트리 허깅'이라고 네가 가르쳐준 그 행위는 내가 나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해 준 것 같아. 나무는 우리에게 당연히 도움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감사해하고, 소통하고, 숨결을 들을 수 있는 존재였어. 그리고 그런 소통을 너는 하고 있었고. 나무랑 소통한 후에는 함께 태안 앞바다에 누워서 모래사장을 느꼈지. 아무 말도 안 해도, 나무와 모래와 바다와 이야기할 수 있는 네게 나는 그날 많이 배웠어.


세 번째로 나무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내 일터야. 엄밀히 따지면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풀'로 구분되지만, 뭐 그럼에도 나무의 형태로 가공되니까. 대나무 칫솔의 시작은 우리가 아는 대나무의 형태로 시작되지 않아. 여러 가공을 거쳐 딱 봐도 나무의 모양으로 칫솔 제작은 시작돼. 초반에 가공 과정에서는 손가락이 많이 찔리기도 하고, 예상치 못 한 상황이 생겨. 물론 후반 공정에도 예상치 못 한 상황은 있지. 대나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예민하고 반응이 빠른 작물이야. 그래서 잘 들여다봐야 해. 그렇지 않으면 좋은 칫솔이 되지 못할 테니까.


나무는 내게 아주 가깝지만 먼 존재야. 있다는 것도 망각하게 되는 그런 존재. 그래서 네가 가르쳐준 트리 허깅은 내게 정말 큰 도움이 됐어. 우리 시간이 남으면 함께 트리 허깅하러 가자!


다음주에는 원래 요청했던 '고래'로 글을 써줘!


2022.10.23

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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