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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에게.
네가 써준 글처럼, 내게도 나무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져. 상황 따라서, 표현 따라서, 관점 따라서.
우선 제일 먼저 떠오른 장면은 오크향 나는 위스키야. 최근 내가 '라프로익'이라는 위스키에 빠지면서 네게 한참 라프로익 얘기만 한 적 있지. 결국 우리는 함께 가자주류에 가서 바틀을 샀고. 그 오크향은 결국 나무향이니까 제일 먼저 떠올랐나 봐. 어쩌면 오크향을 좋아하는 게 세월의 향기를 머금은 나무의 숨결을 마시고 싶었던 것 아닐까. 다행히 최근에는 '빛 32도'를 발견해서 좀 더 쉽고 저렴하게 오크향을 만끽하고 있지만, 라프로익이던 빛이던 술 한 모금에 나무의 아름다움을 품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게 뭐가 있으랴!
두 번째로 떠오른 장면은 '트리 허깅'이야. 우리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함께 태안에 놀러 갔었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떠났던 곳. 생각만큼 아무것도 없었고, 서로가 먹을 것에 진심인걸 확실히 알게 된 날. 그 2박 3일간의 시간 동안 가장 좋았던 순간은 네가 나무와 아무 말 없이 껴안았을 때야. '트리 허깅'이라고 네가 가르쳐준 그 행위는 내가 나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해 준 것 같아. 나무는 우리에게 당연히 도움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감사해하고, 소통하고, 숨결을 들을 수 있는 존재였어. 그리고 그런 소통을 너는 하고 있었고. 나무랑 소통한 후에는 함께 태안 앞바다에 누워서 모래사장을 느꼈지. 아무 말도 안 해도, 나무와 모래와 바다와 이야기할 수 있는 네게 나는 그날 많이 배웠어.
세 번째로 나무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내 일터야. 엄밀히 따지면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풀'로 구분되지만, 뭐 그럼에도 나무의 형태로 가공되니까. 대나무 칫솔의 시작은 우리가 아는 대나무의 형태로 시작되지 않아. 여러 가공을 거쳐 딱 봐도 나무의 모양으로 칫솔 제작은 시작돼. 초반에 가공 과정에서는 손가락이 많이 찔리기도 하고, 예상치 못 한 상황이 생겨. 물론 후반 공정에도 예상치 못 한 상황은 있지. 대나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예민하고 반응이 빠른 작물이야. 그래서 잘 들여다봐야 해. 그렇지 않으면 좋은 칫솔이 되지 못할 테니까.
나무는 내게 아주 가깝지만 먼 존재야. 있다는 것도 망각하게 되는 그런 존재. 그래서 네가 가르쳐준 트리 허깅은 내게 정말 큰 도움이 됐어. 우리 시간이 남으면 함께 트리 허깅하러 가자!
다음주에는 원래 요청했던 '고래'로 글을 써줘!
2022.10.23
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