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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몬 머핀

한국 아줌마가 이웃에게 다가가는 방법

by 앤지

남편은 1월 말부터 미국에서의 근무가 시작되었지만, 나와 두 아이는 5월 초에 미국에 도착했다. 나의 회사 일을 후임자에게 인계하는 동시에 나 혼자 집도 정리하고, 아이들의 미국 학교 입학을 위한 각종 서류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곳의 학제는 8월 말에 새 학년이 시작되어 5월 말에 끝난다. 학년이 끝나기 전에 와서 학적(學籍)이 있어야 여름 방학 동안 여는 '서머스쿨(Summer School)'에 등록하여 언어에 적응할 기간을 가질 수 있다고 들어서, 부랴부랴 이곳 학년말에 맞춰 오긴 했다. 나름 최적의 일정을 잡는다고 노력했는데, 우리 아이들은 새로 등록한 학교에 달랑 열흘 남짓 가 보고 기나긴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버렸다. 큰애는 3주, 작은애는 4주간의 서머스쿨마저 끝나자, 종일 심심한 날들이 시작된 것이다.



다행히 우리 골목에는 우리 아이들만 한 어린이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텍사스 여름의 더위가 좀 견딜만한 것이 되는 오후 대여섯 시가 되면 집 밖 골목길에서 이웃 어린이들이 나와 노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망설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곧바로 우리 아이들은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같이 놀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건 어른의 착각이었는지, 어린이들끼리는 대충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인지, 아무튼 아이들은 매일같이 밖으로 나갔고 이웃 어린이들과 함께 놀았다.

차도 거의 없고 가끔 지나가는 차가 있어도 아이들을 보면 무조건 브레이크부터 밟고 보는 안전한 골목이지만, 어린이들이 고만고만한 나이이다 보니 골목에 자식을 내놓은 부모들-주로 엄마들-은 집 앞에 캠핑용 의자 같은 걸 꺼내놓고 모여 앉아 지켜보곤 했다. 매일같이 튀어나가 무턱대고 끼어서 노는 우리 아이들 덕에 나도 그 엄마 모임에 끼어 내 아이들을 지켜보게 되었다. 긴 여름날이 저물고 이제 한숨 돌리며 엄마들끼리 수다를 떠는, 일종의 '힐링' 모임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극히 한국인다운 생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모임에 '빈 손으로' 끼어들기가 왠지 미안했다. 요즘은 거의 사라진 풍습이지만, 우리나라는 새로 이사를 오면 시루떡을 이웃에 돌리지 않나. 그런 것도 없이 어느 날부터 이 동네에 살기 시작했는데, 이웃끼리의 소모임에까지 그냥 어울리기는 왠지 부끄러웠다. 여기 아이들끼리는 이미 몇 달, 혹은 몇 년씩 친구로 지내던 사이일 텐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을 한 번도 불편하거나 싫은 내색 없이 놀이에 끼워주는 것도 무척이나 고마웠고.

그래서 먹을 것을 조금씩 들고 나가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산 소포장된 젤리, '팝시클(Popsicle)'이라고 부르는, 아무리 봐도 색소가 들어간 설탕물을 얼린 것에 불과한데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그리고 어른들도. 이곳 어른들에게는 일종의 '추억의 과자'인 모양이다.- 아이스캔디, 그리고 아이들 한 입 사이즈로 구운 갖가지 종류의 머핀들.

그중에서 반응이 가장 좋았던 건 시나몬 머핀이었다. 시판 머핀 믹스를 사서 구운 것이었기에 "너무 맛있다!"며 레시피를 묻는 이웃에게 대답하기 좀 민망했는데, 레시피를 물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을 보면 여기 사람들은 베이킹을 아예 하지 않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믹스를 사서 굽는 '어정쩡한' 짓은 잘 하지 않나 보다 싶었다. 그래서 살짝 민망한 마음 반 신기한 마음 반으로, 해당 믹스 상표를 사진으로 찍어 알려주곤 했다.

내가 즐겨 사용하는 'Krusteaz' 시나몬 머핀 믹스

이 시나몬 머핀은 동네 어린이들에게 간식으로 내밀 때도, 아이들 학교 도시락에 디저트로 싸 보냈을 때도, 나중에 생긴 학교 친구네 집에 우리 아이들이 놀러 가게 되어 들려 보냈을 때도, 언제나 모두 반응이 좋았다. 한 번은 "너네 엄마 머핀 너무 맛있어!"라고 하는 친구에게 "우리 집에 와, 아니면 나를 너네 집에 초대해. 그럼 그 머핀 많이 먹을 수 있어."라고 으스대듯 말하는 큰애를 발견하고 '얘야 그거 시판 믹스야. 쟤네 집에서도 구울 수 있을걸.'하고 속으로 중얼거린 적도 있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어느 날 아마도 나의 마음을 살짝 짐작한 한 이웃이 "그렇게 우리를 먹일 필요 없어~(Hey, you don't have to feed us!)"라고 농담 삼아 말할 때까지, 퍽 자주 간식을 들고 나갔던 것 같다. 어, 먹을 것을 들고 나간 것이 오히려 부담을 준 것이었나, 내가 너무 '한국 아줌마'식으로 생각했나,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물론, 먹을 것을 들고 나가지 않았었어도 이웃들과 가까워지는 데 지장은 없었을 것이다. 낯설고 물선, 문자 그대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로 이사 왔는데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한 번은 아이들 하교시간에 갑자기 비가 쏟아진 적이 있었다. 이 동네 비는 몇 분간 쏟아붓고 금방 쨍하니 갤 때가 많아서 별생각 없이 우산만 들고 아이들을 데리러 갔는데, 천둥번개까지 치기 시작했다. 고층건물이 많은 한국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번개가 치면 우산 쓰는 걸 조심해야 하기에 집까지 걸어가려면 쫄딱 젖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선생님들은 천둥번개 시 행동 매뉴얼에 따라 아이들을 건물 안으로 다시 데리고 들어가고, 집에 가려고 서있던 아이들 줄은 엉키고 혼란 속에 서 있는데 이웃 에밀리(Emily)가 "앤지, 너네 애들 찾았어!”하는 소리가 들렸다. 킨더(Kinder)나 1학년은 아이 번호가 적힌 카드를 들고 있지 않으면 아이를 내어주지 않지만, 우리 아이들은 좀 커서 이웃인 걸 확인하고 아이를 보내준 모양이었다. 에밀리 덕에 혼돈 속에서 비교적 빨리 애들과 상봉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또 다른 이웃 캐서린(Catherine)이 차로 우리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아이들을 태우고 집에 갔다가, 우리를 픽업해 준다고 다시 한번 학교 앞으로 와 준 것이었다. 정말이지 감동이었고, 고마웠다.

한 번은 둘째가 실수로 현관문을 이중 잠금 한 채로 닫아버린 걸 모르고, 아이들을 학교 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오니 문이 안 열려서, 달랑 휴대폰만 가진 채로 집 밖에 쫓겨난 꼴이 되어버린 적도 있었다. 하필이면 남편도 출장 가는 비행기 안이라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럴 때는 locksmith를 불러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locksmith가 올 때까지 자기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던 케이틀린(Caitlin)과 그에게 줄 현금을 빌려준 미랜다(Miranda)에게 도움을 받았다.

이웃들은 다들 우리를 생각보다 금세 받아들이고 살갑게 대해 주었다.



하지만 역시, 가끔 정도라면 먹을 것을 들고 나가는 것은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괜찮은 일이 아닐까 싶어 요즘도 이따금 간식이나 음료수를 들고 나간다. 소소한 것에 서툴고, 말도 어눌하게 할 때가 많고, 도움을 줄 일은 거의 없고 받을 일은 많은 외국인 이웃으로서 '은혜를 갚는다'라고 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만, 작게나마 이웃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최소한 ‘Krusteaz’ 회사에게도 괜찮은 일 맞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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