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지 Oct 15. 2021

어쩌다, 텍사스

텍사스에서 Sahm이 되었다

남편의 일 때문에 내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말을 했을 때, 주변이 보인 반응은 크게 이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너의 커리어가 아깝다”와 “그래도 애들한테는 정말 잘 된 일이다”.



나는 직장 생활 4년 차 때 엄마가 되었다. 큰아이를 낳았을 때는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커리어를 유지했고, 둘째아이 돌 무렵에는 남편이 해외 발령이 나는 '악조건'이었는데 엄마와 베이비시터 이모님, 그리고 동네 친구까지 도와주어 버틸 수 있었다. '워킹맘 최대의 고비'라고들 하는 큰아이의 입학 시기도 당시 팀장님의 배려와 주변의 도움으로 잘 넘겼었다.

직장 생활 13년 차, 워킹맘 10년 차. 이제 내 커리어에 앞으로 자잘한 기복은 있을지언정 큰 위기는 없지 않을까, 하고 한숨 돌리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고비 다 넘겼는데, 텍사스라니.


기러기 생활은 둘째 돌 무렵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살짝 '베타 버전'을 맛보았기 때문에,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힘들어도 해내는 분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나는 해낼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그때는 1년 만에 남편이 다시 한국 발령이 났지만 이번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없었다. 가족이 함께 있기 위해서는 내 일을 그만두는 수밖에.

한 번쯤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많았지만 그것이 미국, 더구나 텍사스는 아니었고, 직장을 다니지 않는 나의 모습을 그려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2018년 늦봄의 어느 날 나는 텍사스 남부의 소도시로 이사를 왔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한동안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이웃들과 어울리고, 지역 사회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한국 운전면허를 텍사스 면허로 교환하는 것, 은행 계좌를 만드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고, 아이들을 데리고 각종 병원에 가는 것은 '미션' 수준이었다. 뭐 특별한 일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하루가 저물면 완전히 방전되곤 했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내가 정말 전업주부가 되었구나. 특별히 잘 나간다고 할 것까지야 없었지만 그래도 퍽 좋아했고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었던 내 분야, 내 일이 이제는 없구나.'

하는 생각에 허무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아침 8시도 되기 전에 집을 나서는 두 아이의 도시락과 간식을 챙기려면 평일에는 길게 감상에 빠질 시간도 별로 없이 얼른 자야 했다.

가끔 우울감이 밀려오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이곳에 와서 아이들이 누리게 된 것-한국보다 자유롭고 다소 여유로운 학습 분위기, 일상에서 여러 가지 스포츠를 즐길 여건이 잘 되어있는 것, 영어를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 등-을 꼽아보며 마음을 다스렸다. 물론 그것들을 왜 '내 커리어'와 바꿔야만 했던 것인가, 라는 생각을 끝내 떨쳐버릴 수는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전업주부인 엄마를 SAHM, Stay-at-home-mom이라고 한다. 발음은 '샘' 아니면 '삼'인 것 같은데, 글자로 써진 것만 보았을 뿐 실제로 발음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여하튼, Sahm이 된 나는 말도 잘 못하는 아이들, 문화며 분위기며 모든 것에 서툴러도 예쁘게 봐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 학교에 부지런히 봉사 활동을 다니며 처음 1년가량을 보냈다.

아이들이 이곳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나서는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합법적 체류자라고 해도 '근로'가 가능하려면 이런저런 복잡한 서류들이 따라붙었다. 괜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고, 아이들 돌봄 비용을 생각하면 경제적인 득실도 분명하지 않았다. 적극적이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 또 1년 정도가 흘렀다.

그러다가 COVID가 터졌고,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그야말로 '24시간 아이들과 붙어 지내는' 생활이 1년가량 계속되었다.

어느새 텍사스 생활 4년 차. 큰아이는 7학년, 작은아이는 4학년이 되었다. 올해 8월 말, 아이들이 오프라인 수업으로 돌아가면서 나도 책상 앞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끄적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오랜만에 생겼다.


"일에는 귀천이 없다"라고 다들 말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급여를 적게 받는 일을 급여를 많이 받는 일보다 가치 있다고 여기기는 사실 쉽지 않다. 전업주부가 하는 일들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 모두 그렇게 말은 하지만, '무임금 노동'인지라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전업주부가 되었다고 내 가치가 작아진 게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한동안 자꾸 위축되는 기분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더구나 외국으로 오면서 생활 반경이 작아지고 단순한 것들도 낯설고 어려워지는 경험과 함께 전업주부가 되어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사실 아직 완전히 그런 기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런 기분을 포함하여 텍사스에서 살며 겪고 생각한 것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Sahm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들과 마주치면서 겪고 생각한 것들.

언젠가 이 시간이 분명 내 인생에서 특별했던 날들로 남을 것이고, 더 많은 부분을 기록하고 기억해 두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기에.


*Header Photo by Pete Alexopoulos 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