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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지 Oct 01. 2021

팬더보다 큰 거위 아빠

<쿵푸팬더>

포는 팬더다. 쿵푸에 관심이 많고 유명한 쿵푸 마스터 5인방을 동경하지만 그뿐, 실제로 몸을 움직일 생각은 딱히 없고 만두 몇 알이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팬더. 국숫집을 운영하는 아버지 핑 씨는 아들이 가게를 물려받아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의 전사’를 선택하는 쿵푸 대회가 열리고, 마스터 5인방을 직접 보고 싶어 폭죽을 몸에 묶고 대회장을 향해 몸을 날리는 무리수를 둔 포는 대회장 한가운데 불시착하면서 ‘용의 전사’로 선택된다. 그렇게 얼떨결에 쿵푸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고,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떨치고 정말로 세상을 구해버리는 포의 흥미진진한 모험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이다.



특이한 점은, 포의 아버지 핑 씨는 거위라는 것이다. <쿵푸팬더 1>에서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거위 부모에게서 팬더가 태어나기도 하는 세계관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쿵푸팬더 2>를 보니 포가 친부모-그러니까, 팬더-와 헤어질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 아닌가!

알고 보니 원래 포는 팬더 마을 출생이었다. “흑과 백의 전사가 나타나 너를 무너뜨릴 것이다”라는 예언을 들은 권력자 ‘셴’이 이를 막으려고 팬더들을 몰살시키려 하는 아비규환 속에서 엄마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고 가까스로 채소 박스에 숨겨 지켜낸 아기가 포였다. '모세 이야기'의 팬더 버전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 채소 박스를 배달받은 게 국숫집 핑 씨였던 것.


<쿵푸팬더 3>에서는 살아남은 포의 친아버지 ‘리샨’이 나타난다. 어려서 아버지 핑 씨와 하나도 닮지 않았다는 것을 고민하기도 했고, 재빠르지 못하고 뚱뚱한 팬더로 다짜고짜 ‘용의 전사’가 되어 쿵푸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괴감을 느끼며, 세상을 두어 번쯤 구한 지금도 여전히 때때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품곤 하는 포였다. 처음 만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리샨의 존재에 포는 엄청난 기쁨을 느낀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사악한 악당 '카이'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되는 포. 카이를 막기 위해서는 대대로 팬더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기(氣)'가 필요한데, 리샨의 말에 의하면 기는 팬더 마을에 있다고 한다. 포는 리샨과 함께 팬더 마을에 기를 배우러 가기로 하고, 핑 씨는 여기에 동행하게 된다.

그렇지만 막상 팬더 마을에 도착해 보니, 이곳에 기가 있다는 것은 리샨이 포를 카이와의 위험한 싸움으로부터 빼내기 위해 한 거짓말이었던 것이 밝혀지고, 포는 리샨과 자신의 동족들에게 실망하게 된다.

이때, 풀 죽은 리샨에게 핑 씨가 말한다.

“우리는 옳은 목적을 위해 잘못된 일을 할 때가 있지요. 포는 지금 많이 아프고 힘들 겁니다. 그래도 세상을 구해야 할 아이예요. 포는 우리(BOTH of his dads) 필요할 겁니다.



핑 씨가 처음부터 ‘쿨한’ 양아빠였던 건 아니었다. 2편에서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포가 자신을 떠날까 봐 침울해하기도 했고, 3편에서는 리샨을 만나 포를 ‘빼앗기는’ 듯한 기분에 “댁이 아빠가 맞는지 어떻게 알지요?”하며 경계의 눈초리로 쏘아보기도 한 것을 보면 말이다.

왜 아니겠나. 20년을 애지중지 키운 포. 핑 씨는 포의 첫걸음마도, 처음 말문이 트이던 순간도, 처음 만두 한 판을 다 먹은 날도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내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무지막지한 외모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순식간에 “아빠” 호칭을 획득하는 리샨에게 질투가 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속 좁은 나였다면, 포가 리샨의 거짓말에 실망하던 순간 살짝 쌤통이라고 생각했을 것도 같다.


하지만 핑 씨는 ‘대인’이었다. 리샨이 20년 만에 만난 아들을 위험한 전투에 내보내고 싶지 않아 거짓말까지 해 가며 팬더 마을로 데려온 그 마음이 짠했다. 포가 자랑스러우면서도 왜 내 아들이 세계를 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일 국수를 삶는 핑 씨였기에, 리샨의 마음도 이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핑 씨는 20년 전 포를 품었던 그 넓은 마음에 리샨까지 품는다.

“포는 우리가 필요할 겁니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라고.


내 아이들 포함, 부모 손에 이끌려 온 어린이 관객들이 팬더들의 몸개그를 보며 즐거워하는 영화관에서, 나 혼자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Dads래... 핑 씨 너무 대단해...”라고 중얼거리면서.



목표랄까, 롤모델이랄까. 부모로서 이렇게 되어야겠다, 이런 부모가 되고 싶다고 내가 생각하는 가상의 인물이 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쿵푸팬더>의 거위 아빠 핑 씨이다.

사랑으로 키우는 것은 부모의 기본이니 말할 것도 없다. 국숫집을 이어받기를 바랐지만 쿵푸의 길을 가고 싶어 하는 포를 지지해 주고, 위험해 보여서 말리고 싶은 순간에도 그것이 자식이 원하는 바이고 옳은 길이라면 기도하며 응원해 준다. 그리고 특히 어려울 것 같은 부분인데, 그간 애지중지 키워온 나의 '아기'가 나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더라도 성숙하게 받아들인다.


현실은 요즘 사춘기에 슬슬 접어드는 큰아이가 나에게 툴툴대기만 해도 속상하고, 콩만 한 둘째가 비밀이라며 형아랑만 소곤대는 이야기조차 궁금한 속 좁은 엄마이지만, 어쨌든 나의 장래희망은 '핑 씨처럼 그릇이 큰 부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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