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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지 Oct 22. 2021

정말 행복해졌을까

<제인 더 버진>

텔레노벨라(Telenovela)는 우리말로 직역하면 'TV소설' 정도에 해당하는, 스페인어권의 일일 연속극 장르이다. 내레이터의 존재, 빠르고 극적인 전개와 다소 과장이 있는 묘사, 그리고 '반드시 해피엔딩'인 것을 특징으로 한다고 한다.

베네수엘라의 텔레노벨라 <후아나 라 비르헨>을 원작으로 한 <제인 더 버진(Jane the Virgin)>은 미국에 와서 한동안 내가 즐겨 본 드라마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할머니의 세뇌 교육을 받은 덕에 마이클(Michael)이라는 핫한 남자 친구가 있음에도 혼전순결을 지키고 있던 20대 여성 제인 비야누에바(Jane Villanueva)는 어느 날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의사 루이자(Luisa)의 실수로 인공수정을 받아 임신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현대판 '성모 마리아'가 된 상황.

제인이 임신한 아기의 아빠는 의사 루이자의 동생 라파엘(Rafael)로, 전형적인 '재벌가의 망나니 아들'인데 수년 전 앓은 병으로 인해 이번에 인공수정에 사용된 정자를 제외하면 더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영향도 있고, 제인은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다. 여기에 원래 인공수정을 받았어야 했던 라파엘의 아내 페트라(Petra)와 페트라의 숨겨진 과거가 얽히면서 이야기가 슬슬 복잡해진다.

그런데 루이자와 라파엘의 젊은 새엄마인 로즈(Rose)는 사실 레즈비언으로, 루이자와 연인 관계인 데다 알고 보니 범죄 조직의 수장이었다.

<제인 더 버진>은 라파엘-제인-마이클의 삼각관계와 로즈가 벌이는 황당하고 스케일 큰 범죄, 여기에 제인의 할머니-엄마-제인으로 이어지는 비야누에바 여성 3대의 서사까지, 총 100화에 걸쳐 그야말로 쉴 새 없이 이야기가 휘몰아치는 드라마이다. 우리나라 어지간한 막장 드라마는 명함도 못 내밀 지경으로 인물 관계가 복잡하고, 죽었다가 살아나고, 아무튼 난리도 아닌 스토리인데, 그럼에도 끝까지 가벼움과 따뜻함을 잃지 않고 코미디처럼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 모든 드라마가 시작된, 자궁경부암 검진 환자와 인공수정 환자를 헷갈리는 말도 안 되는 실수를 루이자가 저지른 이유는 애인과 헤어진 슬픔과 숙취에 시달리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루이자의 애인 로즈는 아버지의 새 아내. 아무리 로즈가 "네 아버지와는 사랑 없는 결혼"이라고 했다지만 이런 '콩가루' 관계를 계속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루이자는 로즈와 헤어졌다 미련이 남아 다시 만났다, 다시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로즈가 국제적으로 수배령이 떨어질 정도의 거물급 범죄자이자 자신의 가족들을 해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루이자는 로즈와 정말로 헤어지려 하지만, 로즈는 라파엘, 제인, 제인이 낳은 아기 마테오(Mateo) 등등 루이자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서라도 루이자의 사랑을 다시 얻고자 한다.

드라마의 중심 서사는 물론 라파엘-제인-마이클의 삼각관계에 있고, 로즈는 결과적으로 이들의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 뿐인 여러 가지 시련을 제공하는 '빌런'이지만, 나는 로즈와 루이자의 사랑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하 내용에는 삼각관계의 결론이나 제인 모녀 3대의 미래에 대한 내용은 없지만, 로즈와 루이자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음을 밝힌다.

 

로즈는, 그 방식이 옳았다고는 절대 할 수 없지만, 루이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사람 죽이는 것을 벌레 죽이는 것만큼이나 우습게 알고,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위장 결혼이든 위장 이혼이든 사기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루이자에게만큼은 진심이었다.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개념도 사람 사이의 신뢰라는 개념도 없는 '사이코패스'와도 같은 성격이어서 루이자가 "(새엄마와 사귀는) 이런 관계를 계속할 수는 없다"는 말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로즈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루이자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 외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동안 범죄 조직을 운영하며 벌어놓은 돈과 각종 수단들을 충실히 사용해 루이자의 사랑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언급했다시피 그 노력의 방법이 대단히 잘못되었지만.

루이자가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말아 달라"라고 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정말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대신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가 2천 마일 떨어진 농장 한가운데서 눈 뜨게 만들기는 하지만, 어쨌든 죽이지 않았다. "왜 그랬냐?"라고 묻는 루이자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네가 죽이지 말랬으니까."라고 하는 로즈. 로즈에게는 루이자의 말이 곧 법이었다. "헤어지자."는 말만 빼고.


결국 로즈는 루이자의 손에 죽는다. 로즈가 살아있는 한 루이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루이자의 주변 인물들을 납치든 뭐든 해댔을 것이기 때문에, 로즈가 죽고 나자 드디어 극에는 평화와 안식이 찾아온다.

루이자는 '자살하겠다'라고 협박을 해서 로즈를 당황하게 만든 후, 높은 곳에서 밀어 떨어뜨린다. 텔레노벨라의 특성상, 어설프게(?)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에 드라마는 로즈를 아주 잔인하게, 도저히 '사실은 죽지 않았었다'가 될 수 없게 죽이는 방식을 택한다.

내가 루이자가 걱정된 것은 바로 이 부분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기 가족을 위협해 온 범죄자라고는 해도, 범죄자라는 것을 모를 때부터 오랫동안 사랑한 사이였는데, 자기 손으로 죽였다. 그것도, 이 부분까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잔인한 방식의 죽음이 되어버렸다. 시신조차 거두어 줄 수 없다. 루이자의 정신은, 마음은 정말 괜찮았을까?

극 중에서 루이자는 평안해진 표정으로, 라파엘과 제인과 마테오와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지킬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것이 '무조건 해피엔딩'일 것을 원칙으로 하는 텔레노벨라의 특성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이자는 아마도, 스토리가 이제는 안심할 수 있다며 행복해하는 다른 인물들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사이에, 속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극 중에서 루이자는 로즈가 범죄자라는 것을 안 후에도, 자신이 로즈를 말리기만 하면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여러 번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죽음 외에는 로즈가 루이자를 포기하게 만들 방법이 없었겠지만, 루이자는 아마도 로즈에게 제발 그냥 나 없이 살라고, 살아가라고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인데, 감옥 안에서라도 살아있는 편이 죽는 것보다야, 더구나 자기가 죽여야 했던 것보다야 백 배 천 배 낫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인터넷 기사를 보니 <제인 더 버진>이 한국 드라마로 리메이크가 된다고 한다.

인공수정으로 처녀가 임신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제인 더 버진>의 등장인물들이 한국의 드라마와는 약간 다른 차원인지라 걱정 아닌 걱정이 된다. 범죄 조직 수장인 새엄마와 연인 관계인 레즈비언 딸, 또 다른 범죄자와 연관이 있고 바이섹슈얼인 주인공의 아내, 남편의 아이를 가진 여성의 연인과 한때 데이트를 하게 되는 아내 등의 인물을 한국 드라마에서 현실성 있게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한국 현실에 맞게 각색이 된다면 어떤 식으로 변화될지 궁금하다.

텔레노벨라처럼 '해피엔딩이 담보된' 드라마라면 한 번 봐야겠다. 그리고 한국 버전에서는 루이자에 해당하는 역할에게 조금 더 나은 결말이 주어지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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