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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쌤 May 03. 2023

나에게 특수유아란 없다.

하원지도때 어머니의 눈물.


고작 3일이다. 월.화.수.

이 아이의 원래의 모습을 뿐이다.

내가 엄청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것이 아니다.

그저 이 아이를 아이로 보았을 뿐이다.


.

.

.


1) 몇일전 새로운 아이를 맞이함에 있어서 두려움이 몰려와 글을 남긴적이 있었다.

그것은 아이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나의 결정에 대한 자기확신에 대한 두려움이였다.

한학급 혼합연령. 이미 발달지체 유아 1명인 통합학급에 경계성? 유아 3명 포함, 외국인유아 1명,남녀 성비가 절대적으로 불균형(남11, 여3)인 현재 상황에서 나의 교육적 신념이 그러하다고 오는 아이를 무조건 다 받는다는것이 누구를 위한것인가? 나를 위한것은 아닐까. 나머지 아이들도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나의 결정은 정말 맞는것인가.


하지만 끝까지 끝까지. 나의 결정은  '맞다'였기에 기다렸을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몰려와 선생님들께 SOS를 쳤고 아이를 만나고 그 두려움은 미안함으로 변하였고 아이 자체에 집중할수 있었다.


2) 나는 존재코칭과 버츄프로젝트를 공부하는 교사이다. 존재에 집중하고 그 아이 내면의 빛에 집중하는 교사이다.   그 아이 내면의 빛에 집중하였을때 두려움은 사라진다. 그리고 아이는 아이로 보일 뿐이다.


내 교실에 특수유아란 없다. 내 교실에 문제아는 없다.

너와 내가 있을 뿐이다.


내가 3일동안 한일은 그것이다. 그 아이의 존재에 집중하고 너는 어떤 아이니? 그 아이의 몸짓, 표정, 눈빛에 집중하며 너는 어떤 아이니? 나에게 말해줄래? 귀기울였을 뿐이다.   그리고 특별한 아이로 대우하는것이 아닌 처음 기관에 와서 적응이 필요한 아이로 대했을 뿐이다.


우리반 아이들에게도 그러하다. 이 아이는 특별한 아이가 아니다 그저 새로운 기관에 와서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고 먼저 기관에 다닌 우리들이 배려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줄 필요가 있을수 있는 친구일 뿐이다.


통합교실을 운영함에 있어 나의 대 전제는 이 아이의 장애에 대해서 먼저 소개하지 않는다이다.

아이들이 서로 탐색하고 알아가는 사이에 서로 다름을 인식하는 순간 그것을 나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설명해줄뿐이다. 비단 이 아이가 특수유아이기 때문에 더 필요한 지원일까?

아니다. 우리반 15명의 아이들은 모두 제각기 각자의 빛을 가져서 각자의 방식대로 존재하기에 모두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해야할 존재일뿐이다.


3) 아이가 등원하기 전 사전 협의시간에 어머니는 바닥을 보고 연신 부탁한다. 죄송하다만 말씀하실뿐이였다.

아이를 먼저 데리고 올까요? 먼저 보셔야할까요?


나에게 오는 불일치.

왜요? 왜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세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을 부탁하는거지? 왜 나에게 죄송한거지? 나는 그저 우리가 서로 어떻게 아이를 행복하게 잘 키워나갈수있을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왜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는거지? 아이를 누가 한번보고 뭐라고 판단할수 있는거지?  왜 아이를 보여줄께요?라고 하시는거지?  전시품이 아닌데...  물론 어머니의 마음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씀드렸다.


어떤 아이라도 저는 무조건 좋습니다. 먼저 보지 않아도 오면 저와함께 만나고 함께 호흡맞추어갈것이니 제가 알아야할 정보만 주시면 되요. 저는 무엇이든 좋습니다.


이건 사실이다. 일반학급 즉 특수학급이 없는 일반학급에 배정되는 특수유아의 경우 그렇다고 생각한다. 만일 일반학급의 교사 이상의 지원이 필요한 유아라면 일반학급에 배정되지 않을것이다.

잘 생각해보자. 너무 겁먹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그 두려움이 더 교사 자신을 얼어붙게 할수있다는것을 생각해보면 나를 위해서 누구보다 나를 위해서 겁먹지 않아도된다.

또 잘생각해보자. 각 학급마다 경계성 유아는 꼭 있다. 그 아이랑 이아이는 그렇데 다르지 않다.


그리고 몰랐다.

어머니가 조금은 느린 조금은 다른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 세상에서 어떤 시선을 받는지 말이다.

그냥 감히 '그럴수도 있겠다' 머리로 이해했던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 머리로만 이해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화도 올라왔다. 나에게 오기로 한 이상 그 아이는 내 새끼다. 그런데 왜 내 새끼를 미운오리새끼로 취급하는거지? 두고봐라. 너가 어떤 아이인지 나는 너를 아직 만나지 않았지만 두고봐라.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리라.


사실상 퇴원권유를 받았던 아이. 그리고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어떤 눈초리를 받았는지 순회교사 선생님께 들어서인지 더 화가났다. 고작 3월 한달 아이를 보고 그렇게 판단한다고? 그리고 사실 모든걸 느끼고 인지하는 아이에게 너는 특별하다 너는 다르다는것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느끼도록 했다고? (비난하고 싶지 않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려고한다. 안다. 유아교육의 현실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다. 그 안에 교사가 교실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할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가지 않은것은 아니다. 그분들 또한 아팟으리라...) 상상만해도 그 아이가 느꼈을 수치심이 상상이 된다. 그리고 아프다. 정말 아프다.


4) 월요일. 과감히 모든 지원을 거두고 오롯히 월화수목요일 나와 호흡을 맞추자라고 했다.

아이 자체가 자신이 어떤 아이인지 보여주기도 전에 보태지는 지원들.

아이가 피곤해 보였다. 아이가 매우 피곤해 보였다. '나는 그냥 둬줬으면 좋겠어요'라고 외치는거처럼 보였다.  그렇게 화요일 수요일 2일. 모든 지원 거두고 교실에 너와 내가 있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반 아이들 우리.

아이는 그제서야 숨통이 트이는듯 아이는 자유롭게 교실 이곳저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난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그대로 바라봐주고 너의 속도대로 너가 이해할수있는 만큼으로 설명해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여러번 말해주었아. 00아 우리교실에 온걸 환영해. 00아 정말 보고싶었어. 00아 선생님이 안아줘도될까? 00아 정말 사랑해. 00아 00이가 우리교실에 와서 너무 좋아. 00아 선생님한테 와줘서 고마워.


늘 항상 아이들에게 미안한것은 늘 기대이상으로 보여주는걸 큰 기대를 하지 않나 하는것이다. 적응을 하고 마음을 여는데 그리고 너를 보여주는데 얼만큼이 시간이 필요하겠지 했지만. 나의 이러한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아이는 몇일만에 편안해졌다. 나는 느낄수 있었다.


5) 아이의 마음이 나만 느끼는건 아니였다보다. 오늘 하원지도하는 시간 하나씩 순서대로 1,2,3 주문을 외우며(우리반 아이들이 하는 하원시 주문이다^^ 1. 물통을 챙긴다 2. ~~~~ 이런^^) 하나씩 하나씩 눈맞추며 마지막은 부모님께 인사하고 진짜 마지막은 선생님과 인사하는 시간이다. 자연스럽에 누구나 하는, 물론 00이도 해내는 그런 시간, 집에 돌려보내며 마음을 꾹꾹담아 보내는 시간이다. 그렇게 아이는 편안하게 인사해준다. 그리고 꼭 안아주는 인사까지 '잘가~ 내일만나 내일도 선생님 만나러와줘 기다리고 있을께...'....  그런데 어머니께서 눈물을 글썽이신다. 그리고 하시는 말에 나도 함께 울컥하였다.


'어머 선생님 우리 00이 이런 모습 처음이예요'

'어머 선생님 이런 모습 처음봐요'

'어머 00아 이 유치원 최고다 그치?'

'어머 선생님 최고예요'


칭찬을 받아서 감격한건 아닐것이다.  그 어머니의 눈물 안에 그동안 어머니께서 겪으셨을 많은 좌절이 느껴져서이다. 그리고 나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구나 라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이 감동을.. 이 감사를 어떻게 남겨두어야할까. 이 감동을 이 감사를 어떻게 글로 다 남겨두어야하나.

나의 부족한 글솜씨가 이를 다 담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6) 감사하다. 00이에게..  

00아 고맙다. 나를 특별한 교사로 만들어줘서.. 나에게 이런 기쁨을 준 00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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