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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ie 앤지 Aug 20. 2020

덕질이 마케팅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20년 차 덕후 마케터가 전하는 팬덤 마케팅 노하우

영희는 웃는 게 예쁘니까 얼빡샷*을 많이 찍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비하인드 필름은 영희 시時*에 풀자.


"그게 무슨 말이에요?"


브랜드에서 처음으로 아이돌 모델을 쓰게 되었을 때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공유하는데, 신나서 쏟아낸 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 당황을 했던 건 오히려 나. 그러니까, '덕후'인 나.  밥 먹듯, 아니 숨 쉬듯 뱉었던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별천지의 단어였다니.



아무도 모른다. 덕후 빼고

그 날부터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보고 장표를 만들었다. 새로운 모델, 그리고 새로운 고객 그룹을 맞이하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적었다. 흰 종이에 일반적인 보고서와는 조금 다른, 그러나 내 일상과는 너무도 밀접한(?) 단어와 이미지들이 가득 채워졌다. '아이돌을 쓸 거니까, 이제부터 수익을 더 올릴 수 있어요' 같은 단순한 논리가 아니었다. 먼저 고민하고 미리 예습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다.


우리가 처음으로 공부한 것들

- 모델 영희의 생일 등 기본적인 프로필

- 모델 영희가 속한 그룹의 역사

- 모델 영희의 별명, 애칭 등


우리는 먼저 영희를 좋아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영희와 관련된 SNS를 팔로우하고, 유튜브에 올라온 영희의 영상을 시청하고, 커뮤니티에서 영희의 팬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을 정독했다. 그런 다음 우리 브랜드와 영희, 영희의 팬덤을 잇는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다음으로 고민한 문제들

- Hero 콘텐츠 외에 어떤 서브 콘텐츠를 더 찍으면 좋을지

- 그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푸는 게 좋을지

- 우리 모델에게 브랜드는 (팬심을 더해) 어떤 걸 더 해줄 수 있을지

- 팬들이 좋아하면서도 브랜드 매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템/서비스는 무엇인지

- 이렇게 브랜드가 모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케어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아이돌을 모델로 선정하면 대부분의 콘텐츠가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다. 하지만 그 이상의 시너지는 담당자의 '팬덤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달라진다. 브랜드가 내가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주는 것. 팬덤을 위한 마케팅은 그만큼 고차원의 일이다. 덕심은 잘 짜인 메커니즘만으로 움직이는 영역이 아니니까.


다행히 우리의 노력은 전달이 되었고 팬들이 조금씩 브랜드에 관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브랜드 계정의 팔로워가 늘었고, 문의와 응원 메시지가 쏟아졌고, 팬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나르기 시작했다. 그토록 바라던 소통의 시작이었다.



버려지지 않는 러브레터를 쓰는 법

소통이 시작됐다면 수위를 조절할 단계다.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넘치면 독이 되듯이, 브랜드의 팬덤 커뮤니케이션도 진심을 녹이되 도를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흉내만 내서는 더더욱 안된다. 아래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도록 유의하자.


- 단가 낮춘다고 얼굴 구겨지는 재질로 판촉용 포토카드 뽑기

- 미공개 사진이라고 해놓고 자사몰-외부몰-SNS에 똑같은 사진 풀기

- 모델 관련 이벤트 당첨자에 사내 직원 등 특혜주기 (최악 of 최악)

- 지나치게 다 아는 척, 팬덤을 통달한 척 팬 문화 흉내내기


아이돌은 아니더라도, 살면서 무언가를 깊게 좋아해 본 경험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곰인형과 모형 자동차를 애지중지하던 그 순수한 마음. 읽기도 어려운 공룡 이름을 달달 외우던 그때처럼. 그 마음 그대로를 팬덤 마케팅에 녹일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짧은 SNS 문안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아래 두 문장의 차이점을 느껴보자.


1> 신제품 000 출시, 영희가 바른 000 컬러를 지금 체크해보세요!

2> 인간 000! ㅁㅁ 뮤직비디오 속 영희만큼 상큼한 000 컬러를 지금 체크해보세요 (토끼 이모티콘)


2번의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영희가 최근 발매한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알고 있어야 하고, 영희를 상징하는 이모티콘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이 문장 하나만으로 영희의 팬덤은 브랜드가 얼마나 영희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있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다. 영희에 대해 A부터 Z까지 모두 꿰고 있는 팬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전개한다면, 최소한 이 정도의 관심은 필수다.



결국 브랜드에게 필요한 것도, 팬덤

몇 년 사이 팬덤 마케팅이 소위 '잘 나가는 브랜드의 노하우'로 대두되었다. 위에서는 브랜드 모델의 팬덤을 활용하는 팬덤 마케팅에 집중해 사례를 들었지만, 이는 브랜드 팬덤 마케팅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팬덤, 덕후에 대한 이해 없이 브랜드의 팬을 만들 수는 없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브랜드의 팬덤을 구축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덕질을 해본 적이 없다면 마케터의 본질에 대해 먼저 고민해보자. 마케터는 결국 세상에서 이 브랜드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브랜드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하고, 브랜드의 모난 부분도 소중하게 다뤄줘야 하고, 브랜드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좋아하는 것, 마음을 이끄는 것에 대한 본질은 결국 같다. 내가 먼저 좋아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도 나를, 모델을, 브랜드를 좋아해 준다.


그러니까 앞으로 더 많이 좋아하기로 하자.

브랜드든 뭐든, 치열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angiethinks_




[용어 참조]

1) 얼빡샷*: 얼굴이 빡! 타이트하게 잡힌 이미지.

2) 영희 시時*: 영희의 생일을 시간으로 변환한 시각. 생일이 5월 1일이라면 5시 1분이 영희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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