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딸, 듣지 않는 엄마
화요일 아침엔
딸아이를 학교 앞에서 내려 주고 하루 일과 시작 전 카페에 들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은근 화요일 아침이 기다려진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자
행복감을 느끼는 시간이기에.
글이란 묘하다.
딸과의 대화 “너를 바라보며 나를 쓰다”라는 글을 마감하고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무언가 마음이 허전하다.
딸과의 소통이 막힌 느낌.
사춘기와 갱년기,
서로의 침묵 속에서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원래 말수가 적은 엄마와
말수가 줄어드는 딸아이.
예전엔 등굣길 차 안에서 말이 많던 딸아이 덕분에
아침마다 웃으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요즘은 차 안에 침묵만이 흐른다.
학교 앞에서
차에서 내릴 때
“갔다 와.”
“응.”
이 두 마디.
딸과의 대화 NO.2로
다시 글을 써야 할까?
그런데 버겁다.
지금의 연재글만으로도 벅차다.
또 그런데
딸과의 대화가 없는 건 더 버겁다.
나이가 들고
몸이 지쳐가고
마음이 지쳐가면서
딸아이의 말을 들어줄 힘도 없다.
아니, 무언가 말을 하는데
귀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면서
딸아이도 말수가 줄어든 것 같다.
지금의 딸과 나의 모습은
결국 나로 인한 모습이다.
왜?
나는 더 들어주지 못하고
딸아이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할까?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딸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무슨 생각을 할까?
글을 쓸 때는 이런 마음을 털어놓으면
딸아이가 읽고
짧게나마 말을 하거나 답장을 보내곤 했다.
그마저도 요즘은 없다.
그래서
딸아이가 연재가 끝날 때
아쉬워했던 것 같다.
지금 문득
드는 생각은
“연재가 아니더라도 이런 날이면, 이렇게 딸과의 대화를 글로 다시 시작해 보자.”
글이 주는 힘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내 마음을 꺼내놓는 순간,
글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침묵하던 나를 다시 말하게 만든다.
말로는 잘 전해지지 않는 엄마의 마음도
글로 쓰면 조금씩 닿는다.
딸과 나 사이의 끊어진 대화를
다시 잇는 다리가 바로 글이라는 사실.
글은 내 안의 상처와 두려움을
바깥으로 꺼내어 숨 쉬게 하고,
그 과정을 통해 마음이 다시 단단해진다.
나는 여전히 버겁지만,
오늘도 글을 쓴다.
글은 나의 힘이고,
서로 멀어진 마음을 다시 이어주는 가장 따뜻한 대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