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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피 냄새를 좋아하는 도살자, 사마귀

드라마 "사마귀"와 가정폭력, 그리고 사회가 길러낸 그림자

by 소망안고 단심

“피 냄새를 좋아하는 도살자 사마귀, 그냥 괴물이야”


곤충 사마귀는 암컷이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사마귀는 잔혹함과 포식자의 상징으로 불린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다.

교미 후 수컷을 먹어 단백질과 영양분을 흡수해야 더 많은 알을 낳고, 알의 생존율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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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에서

‘정이신’은 아내와 아이를 때리고 지배하는 가정 폭력범 남성들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다.


정이신은 왜 사마귀라 불렸을까?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 폭력의 피해자로 자랐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는 장면을 보았고, 어린 자신도 폭력에 시달렸다.

결혼 후 남편에게도 똑같은 폭력을 겪으며 삶은 끝없는 굴레가 되었다.




첫 번째 살인 – 억압된 피해자의 폭발이다

정이신이 남편을 죽인 것은 곤충 사마귀가 수컷을 잡아먹는 행위와 닮아있다.

그건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아들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자기 방어였다.


그러나 그 순간 억눌렸던 분노는 터져 나왔다.

누적된 공포와 두려움이 임계점을 넘어 폭발했고, 그녀는 한 번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섰다.




정이신은 억압된 피해자의 폭발이 연쇄 살인으로의 전환되었다.

남편을 죽인 이후, 정이신은 같은 유형의 남자들만 골랐다.

여성을 억압하고 아이를 지배하는 가정 폭력범들.

그녀에게 살인은 무작위적 범죄가 아니라 징벌적 선택이 되었다.


그리고 자기 정당화가 뒤따랐다.

“나는 악인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가 외면한 정의를 실현하는 존재다.”

살인은 이제 죄가 아니라, 사회적 응징으로 합리화되었다.




정이신은 괴물인가, 피해자인가

결국 정이신의 살인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권력의 욕망, 그리고 자기 정당화가 얽혀 있었다.

그녀는 정말 괴물일까?

아니면 폭력의 희생자였을까?


정이신의 살인에는 단순한 생존 본능만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녀가 피해자의 자리에서 벗어나려 할 때, 그 안에는 권력에 대한 욕망도 스며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남편에게 지배당하며 무력감 속에 살아온 그녀는,

살인을 통해 처음으로 “내가 상황을 통제한다”는 힘을 경험했다.


그래서 그녀는 단순히 복수자가 아니라, 심판자가 되고자 했다.

누가 악인인지, 누가 벌을 받아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하는 자리에 선 것이다.

이는 트라우마와 분노, 그리고 왜곡된 정의감이 뒤섞여 만들어낸 권력의 환상이었다.


인간은 억압에서 벗어날 때조차 권력을 욕망한다.

그렇다면 정이신은 피해자였을까, 아니면 권력에 취한 새로운 가해자였을까?

혹은, 우리 모두 안에 잠든 “사마귀의 그림자”는 아닐까?




저자 또한 어린 시절 가정 폭력을 겪었다.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어디에도 보호를 청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약한 형제를 지켜주지 못했고, 사회 역시 침묵했다.

그 안에서 상실과 트라우마, 분노와 증오와 미움이 함께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속 정이신 역시 같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 누구도 그녀를 지켜주지 않았고,

결혼 후 남편의 폭력 속에서도 제도와 사회는 방관했다.


사회는 연쇄 살인범 정이신을 괴물이라 불렀지만,

저자는 그녀를 괴물로 만들어낸 사회를 보았다.


사회는 폭력을 방치했고, 피해자는 결국 괴물이 되었다.

정이신의 살인은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의 부산물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이신은 괴물인가, 아니면 사회가 만든 괴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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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리나라에는 가정 폭력이 존재한다.

2024년 한 해 동안만 해도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236,647건에 달했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의 92.3%는 어디에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즉, 통계로 드러난 수치 뒤에는 훨씬 더 많은 ‘숨은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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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괴물의 그림자를 넘어

정이신은 드라마 속 인물이지만, 그녀의 서사는 결코 허구만은 아니다.

폭력은 가정 안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을 방치하는 건 결국 사회다.


정이신을 괴물이라 부르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정이신은 단지 한 개인의 범죄자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 온 사회의 그림자였다.

가정폭력을 방치한다면, 또 다른 정이신은 언제든 만들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진짜 괴물은 그녀였을까, 아니면 무책임하게 침묵해 온 우리 사회였을까?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폭력을 외면하지 않고,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피해자를 지켜내려는 사회라면 더 이상 괴물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괴물의 그림자가 아닌, 서로의 빛이 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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