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스케줄이 아니라 신뢰의 끈이다
요즘 사람들을 대하면서 느끼는 것은,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 비해 ‘약속의 개념’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네, 내일은 꼭 봬요.”
분명 약속을 했는데,
당일이 되면 연락도 없고, 문자도 없는 황당한 일을 겪는 경우가 많아졌다.
‘언제부터’라고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대략 저자가 이삼십 대였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그 시절 저자는 약속 시간 20~30분 전에 미리 약속 장소에 나가 기다렸다.
물론 늦게 오는 사람은 있었지만, 약속을 아예 어기고 나오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당일 아침, 카톡 알림이 울려 확인해 보면
“미안. 오늘 못 나갈 것 같아. 다음에 보자.”
라는 메시지를 쉽게 접한다.
심지어 약속 장소에 나가 기다리고 있는데
오지 않는 사람들도 이제는 드물지 않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건 나만 겪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환경과 사람들의 심리, 약속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닐까?
약속이란
앞으로 있을 일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지 서로 동의하는 것이다.
단순한 스케줄이 아니라,
신뢰와 책임, 관계를 유지하는 장치다.
국가 간 약속은 평화와 전쟁을 가르는 분기점이다.
국가 간 약속이 깨지면 외교적 신뢰가 무너지고,
협상은 결렬되며, 경제적·군사적 압박과 제재가 이어진다.
기업 간 약속도 마찬가지다.
한 번 어기면 거래처 신뢰를 잃고 다음 계약을 따낼 수 없으며,
결국 기업의 존폐를 좌우할 수도 있다.
직장 생활은 출근·퇴근 시간이라는 약속에서 시작한다.
학교도 출석·퇴교 시간이라는 약속 위에서 돌아간다.
심지어 버스를 탈 때 줄을 서고 순서를 지키는 것, 모두 서로 간의 약속이다.
그런데 요즘 사회에서 약속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관계 중심 사회에서 개인주의 중심 사회로 옮겨가면서,
“나 피곤하면 약속 안 가도 돼.”
“기분 안 좋으면 취소해도 돼.”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고, 심지어 당당하게 느껴지는 문화가 되었다.
또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카톡 한 줄이면 취소가 가능해졌다.
책임감은 약해지고, 약속의 무게감도 가벼워졌다.
여기에 하나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우울증과 약속의 관계다.
약속을 자주 어기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니,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현대 사회는 우울증 환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울증은 단순히 기분만 우울한 것이 아니라 신체적 에너지를 떨어뜨린다.
머리로는 “약속 지켜야지”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일어나서 씻고 나가야지” 하지만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또 우울증은 집중력과 계획 능력을 떨어뜨려 약속 시간을 잊어버리게 한다.
생각이 부정적으로 흐르고,
그 부정적 생각이 몸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행동을 멈추게 한다.
약속 준비가 싫어지고, 나가기 싫어지고,
반복적으로 약속을 취소하다 보면 결국 연락조차 받지 않게 된다.
즉,
우울증 환자가 약속을 어기는 건 의지 부족이 아니라 질환의 증상으로 봐야 한다.
약속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신뢰를 쌓고 관계를 이어주는 약속의 끈이다.
약속의 무게가 가벼워진 건 개인주의, 디지털화, 심리적 질환 등 여러 요인의 결과다.
그러나 약속이 무너진 사회는 결국 신뢰가 무너진 사회와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첫걸음은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고, 한 번 한 약속은 성실히 지키는 습관”**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작은 실천이 사람 사이의 신뢰를 되살리고, 더 건강한 관계와 사회를 만드는 시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