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자존심,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의 심리학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한다.
특히 권력자라면 더 그렇다.
권력자는 더 큰 무대에서, 더 왜곡된 정보로, 더 많은 압박 속에서 판단을 내리기에
일반인보다 더 많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
하지만 권력자가 내린 결정은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작은 실수 하나도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그럼에도 권력자가 “난 실수 안 했어”라며 회피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밑에 있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권력이라는 것은 결국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자리다.
그런데 왜 많은 권력자들이 실수를 인정하지 않을까?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곧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모든 잘못을 자신의 몫으로 만드는 것처럼 느껴지니,
사과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위계가 있는 관계에서는 “내가 먼저 사과하면 내 위치가 흔들린다”는 두려움이 작동한다.
권위적인 사람일수록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하는 이유는 결국 권력을 지키려는 방어기제다.
권력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권위’이기 때문이다.
나의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권위에 금이 가는 것처럼 느껴져서 실수보다 ‘인정’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권위가 무너질까 두려워하는 권위 유지 본능인 것이다.
권력이 오래 지속될수록 사람은 스스로를 ‘틀릴 수 없는 존재’라고 착각하게 된다.
비판을 듣지 않다 보니 자기 합리화는 더 강해지고, 스스로 옳다고만 믿게 된다.
결국 실수를 인정하기보다 “환경 탓, 부하 탓”으로 책임을 돌리게 되고,
체면을 지키기 위해 침묵, 말 바꾸기, 책임 전가를 반복한다.
권력자뿐 아니라 같은 위치의 관계에서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경쟁심리와 깊게 연결돼 있다.
직장 내 동료나 친구 사이에서 “내가 먼저 미안해” 하면 내가 진 것 같고,
상대와의 서열에서 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사과를 하는 것이 주도권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어릴 때 나는 자존심이 강한 편이었다.
형제들과 싸워도 절대로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고, 실수했다는 것도 인정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타인의 실수로 인해 상처받는 일이 많아질수록,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회복하고 이기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당당히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다.
“내가 잘못했다고 해서 내가 무너지는 게 아니다”라는 걸 알기 때문에 실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사과를 단순히 체면을 깎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는 도구로 이해한다.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가 상대의 마음을 풀고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또한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어, “사과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더 빠른 길”이라는 걸 이해하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하며, 사과를 이기고 지는 문제로 보지 않는다.
반대로,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습관적으로 “미안해”를 달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관계를 지키려는 과도한 배려에서 출발한다.
갈등을 피하려고, 혹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자동적으로 “미안해”를 말하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고 타인의 표정과 말투에 과민한 사람일수록,
“내가 뭔가 잘못했나?”라는 불안이 생기고 그래서 미리 사과부터 한다.
어린 시절 혼나고 꾸중 들었던 경험이 몸에 배어,
트라우마성 학습처럼 **“사과하면 일이 커지지 않는다”**라고 배운 결과일 수도 있다.
이런 습관적 사과는 처음엔 착하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의 무게를 잃고 신뢰를 떨어뜨린다.
때로는 책임 회피처럼 보이기도 하고, 상대에게는 짜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나는 이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타인이 나에게 어떻게 대해주길 바라는가?
나는 “미안해”라는 말이 진심이 담긴 말이 되길 원한다.
습관처럼 흘려보내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말.
그 모습이 당당하게 보이고, 오히려 멋지게 보인다.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내가 되고 싶다.
사과는 패배가 아니라 성장의 출발점이라는 걸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