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사람을 통해 배운 인간관계의 심리학
얼마 전,
“님은 저랑 너무 안 맞아요,”
“저는 당신이 불편해요”라는 말을 들었다.
나 역시 “저도 당신이 불편합니다”라고 답했다.
사실 서로 성향이 맞지 않은 것을 넘어,
100% 정반대의 성격과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가까이할수록 스트레스가 심해질 것 같아 웬만하면 부딪히지 않으려 했지만,
그가 잠시 팀을 주관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고,
지켜야 하는 선후배 간의 질서를 무너뜨렸으며,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팀 내에서 나를 배제하려 했다.
그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웠고,
내가 느낀 불편함이 단순한 성격 차이를 넘어선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인간관계에서 감정소비 하지 않고 나를 지키는 법’이라는 영상을 보았다.
그 안에서 인간관계 유형 중, 자기 자신 중심의 관계를 가지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깨달았다.
‘아, 나에게 “당신이 불편하다”라고 말한 그 사람도 결국 자기중심적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구나.’
우리가 사는 사회는 나와 같은 사람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른 환경과 경험 속에서 자기만의 방식을 터득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목표를 이루려면 반드시 소통이 필요하다.
그런데 소통은 내 중심에서 출발하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소통이란
‘내가 상대방이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을 품는 것이다.
즉, 내 기준이 아니라 상대의 형편과 처지 속에서 바라보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를 자기중심으로만 맺으려 할까?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자기 인식의 결핍과 낮은 관계 성숙도에서 비롯된다.
관계란 원래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율하는 과정인데,
그 과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기 세계 안에만 머무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사람을 마주하면 불편함을 느끼고,
결국 관계 자체를 회피하거나 배제하려 한다.
자기중심적 사람들은 타인과 맞추려 하기보다 주도권을 쥐려 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에 맞추는 것이 곧 자존심이 꺾이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네게 맞추지 않을 거야”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결국 “넌 내 기준에 맞느냐, 아니냐”로 사람을 평가한다.
문제는,
이런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더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공과 사의 경계는 무너지고, 권력을 휘두르며 사적 감정에 따라 사람을 배제하거나 선별한다.
조직의 질서는 흔들리고,
사람들은 능력보다 아부와 충성으로 살아남으려 하며,
건강한 소통은 사라지고 불신만 쌓인다.
결국 조직은 성과보다 권력자의 기분에 좌우되는 구조로 타락한다.
겉으로는 리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불안과 미성숙이 만들어낸 권력 남용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적어도 관계에서 자기중심만을 고집하며 권력을 사적 도구로 쓰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다름을 감당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기준이 아니라,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소통하려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다면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날 수 있도록 지지하는 힘으로 쓰고 싶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은 다름을 포용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보시는 분께서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