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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고독 속에서 충전되는 나

사람과의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가

by 소망안고 단심

밝은 아침,

사람들이 분주히 출근길을 오가는 시간


나는 잠시 그 흐름에서 벗어나,

늘 찾는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책 한 권, 그리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이 순간이야말로 내 하루에서 가장 고요하고 충만한 시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활력을 얻는다.

웃음을 주고받고, 대화를 나누며 삶의 에너지를 충전한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오히려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

내 에너지는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소진되어 갔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내게는 타인과 떨어져 홀로 보내는 시간이 충전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연기'가 되어버린 대화

처음에는 내가 유독 인간관계에 서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니,

나는 사람의 미묘한 변화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새로운 옷차림이나 달라진 헤어스타일에는 무심하다.

그러나 대화 속에서 바뀌는 눈빛,

한순간 흔들리는 표정,

어떤 말에 스치는 감정의 미묘한 파동은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했다.


처음엔 그걸 ‘촉이 빠르다’고 여겼지만,

이내 그것은 예민함이 아닌 과도한 분석의 습관임을 깨달았다.


나는 대화를 나누는 동시에 끊임없이 ‘연기’를 하고 있었다.

상대의 표정, 말투, 목소리 톤을 읽고,

그 속뜻을 헤아리며 나 자신을 그에 맞춰 조율했다.


‘이 말을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저 사람의 속내는 저 말이 아닐 거야.’

끝없는 계산과 조심성 속에서 뇌는 이미 지쳐가고 있었다.


대화를 하는 내내 나는 온전한 나 자신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만들어진 하나의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보호 본능

왜 나는 이렇게까지 경계하며 사람을 대할까?


그 뿌리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늘 예의를 강조받고 술주정과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환경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법칙들을 만들었다.


흐트러지지 말 것,

우습게 보이지 말 것,

완벽해야 할 것.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는 강박과 무너짐 없는 모습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지배했다.


그 모든 다짐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결국,

타인 앞에서 쉽게 지치고

늘 자기 억제의 옷을 입는 이유는 단순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건 나를 지키기 위한 생존의 방식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흐트러지는 순간,

세상의 공격에 노출될 것이라는 어린 시절의 두려움이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고독은 나를 치유하는 안식처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감정을 나누며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그 교류 속에서 충전되기보다 오히려 고갈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이 비로소 편안해졌다.

나는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있을 때 오히려 더 따뜻해지고,

더 온전해지고, 더 자유로워진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카페의 소음 속에서도,

책장 위의 문장 속에서도,

음악의 선율 속에서도 나는 나 자신을 회복한다.


홀로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본연의 나로 돌아가는 가장 소중한 순간이다.


예민함은 나의 감각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과 삶의 궤적이 빚어낸 결과다.


그 안에는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다.

사람 앞에서 쉽게 지치지만,

대신 누구보다 깊이 들여다보는 눈을 가졌다.


과도한 자기 억제 속에서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나를 힘들게 했던 예민함을 결점이라 부르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내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을 읽어내는 특별한 감각이다.

그리고 혼자의 시간을 '결핍'이 아닌 '충전'의 방식으로 온전히 존중하기로 했다.


오늘도 나는 카페 창가에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 시간은 나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소중한 순간이자, 나 자신을 온전히 만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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