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풍파를 견디는 방법

가운데의 역할

by 박세환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라인에 이사 가는 날.

사다리차가 와서 11층까지 긴 목을 쭉 뻗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사다리차가 공중에 떠있다. 무슨 마술처럼.


아마 높게 사다리를 뻗었을 때 중심을 잡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타이어 바퀴는 고무라 높은 곳에서 무게가 실리면 한쪽으로 치우쳐져 쓰러질지도 모른다.

공중에 떠있는 트럭을 보며 저 몇 톤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나무토막이 대견하게 여겨졌다.


기중기 아래에 깔려서 온몸으로 그 무게를 견디고 있는 나무토막은 수많은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모습이었다.

꼭 영화에서 보면 온몸이 흉터와 상처 자국으로 도배되어 있는 용사의 느낌.

무거운 이삿짐 무게와 돌바닥 사이에 끼어 그 가운데서 중재자의 역할도 하고 있다.


왜 기중기 아래 받침대로 나무토막을 사용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가지고 다니기 가벼워야 하고, 표면이 반질거리면 미끄러질지도 모르고,

튼튼하되 너무 딱딱하면 힘과 힘이 부딪혀 깨질 수도 있다.

이런 이유들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나무토막을 보니 뭔가 능력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꿈보다 해몽이었다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맞이한다.

그중에 선배와 후배 사이에 끼어서 어떻게 판단해야 될지 고민될 때가 있다.

누구 편을 들자니 한쪽한테 미안해지는 이 기분.

그리고 둘 다 놓치고 싶지는 않은 마음.


이때 가운데서 중재자의 역할로 잘 버텨주고 있는 나무토막이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끼어서 힘들어도 양쪽 다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모습.

사다리차는 쉽고 편하게 짐을 옮길 수 있도록 해 주고

돌바닥은 아무 흠집 없이 지구 편에 서서 그 무게를 온몸으로 받치고 있다.

나무토막은 그 사이에서 안전하게 사다리차에서 받은 무게를 돌바닥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나무토막을 통해 가운데서 해야 될 역할이 눈에 들어온다.

선배와 후배의 꾸중과 투정을 받아주고 흡수할 수 있는 사람.

이때 어느 정도 한쪽 귀로 흘릴 수 있는 능력은 필수 아이템이다.

그래야 평화로운 회사생활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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