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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 몇 숟가락이 그렇게 아깝냐?
부모의 마음
by
박세환
Jun 20. 2020
와이프 J가 부엌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이따 눈에 쓰라림과 함께 뻑뻑함이 밀려왔다.
부엌에 가보니 와이프가 눈물을 참으며 양파를 썰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작은 조각으로 잘게 잘게.
오늘 저녁은 온 가족이 좋아하는 카레였다.
아이들 먹기 편하게 하기 위해 양파를 포함하여 당근, 감자, 호박을 잘게 썰어 넣었다.
거기에다가 비장의 무기로 최애품인 스팸도 들어갔다.
카레를 먹으면서 와이프는 연신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어'를 남발했다.
내 입에서 '진짜 맛있다'는 말을 3번 정도 듣고 싶었나 보다.
솔직히 아이들을 포함하여 모두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이 밥을 안 남기고 다 먹을 정도면 진짜 맛있는 거다.
다양한 채소와 스팸의 오묘한 조화에 살짝 매콤할 것 같다가 달콤한 끝맛이 아이들 입맛을 사로잡았다.
차려준 밥을 다 먹고 일어서는데 냄비에 남아있는 카레가 눈에 띄었다.
빈 밥그릇을 가져다가 카레만 떠서 먹어봤는데 더 진한고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살찔까봐 탄수화물인 밥은 빼고 카레만 더 먹고 싶은 마음에 다시 국자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와이프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앙칼진 목소리와 함께.
'그만 좀 먹어. 내일 애들 줘야 해'
그러더니 내가 손 못 대게 냄비에 있는 카레를 플라스틱 반찬통에 옮겨 담았다.
그때의 기분이란 뭐랄까. 삐딱하게 얘기하자면 도둑질하다 걸린 느낌.
카레 몇 숟가락 먹었다가 애들 밥 뺏어먹은 아빠가 된 거 같았다.
서운함과 함께 '나도 카레 좋아하는데' 하고 외치고 싶었다.
그래도 아이들 먹여야 된다는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묵묵히 설거지를 시작하였다.
육아를 하게 되면서 나 보다는 아이들 위주로 더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공감할 것으로 생각된다.
매월 받는 월급 안에서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그러려니 하며 별로 아깝지 않은데
나에게 들어가는 돈은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게 꼭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더 싼 것은 없는지.
회사에서 동료들과 차 마시면서 이런 얘기를 하면 너도 나도 본인들의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한 친구는 옷에 대해 얘기를 했다.
아이들 있기 전에는 명품은 아니지만 좋은 메이커 입었는데 지금은 그냥 싸고 예쁜 거 찾는다고.
또 다른 친구는 학원비에 대해 얘기했다.
아이들 학원 다니는 것은 안 아까운데 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은 왜 그리도 망설이게 되는지.
그냥 유튜브에서 공짜 강의를 찾게 된다고 하였다.
나 역시도 취미를 찾을 때 저절로 돈이 안 들어가는 것에 마음이 쏠린다.
이게 한정된 경제사정을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부모의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 자신보다는 아이들이 더 잘 먹고 잘 입기를 바라는 마음.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라는 옛말이 있다.
지금까지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틀린 거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우리 부모님도 그런 마음으로 나를 키우셨을 것이다.
앞으로는 와이프에게 얘기해야겠다.
우리도 최소한 카레 먹을 형편은 되니깐 이왕이면 왕창 끓이라고.
그리고 나도 카레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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