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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다양한 문화, 다양한 경험

by 박세환

캐나다에서 놀란 것은 중국인의 생활 모습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내가 본 차이나타운의 중국인들은 생활이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본 중국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화려하고 멋지고 당당했다. 여기는 잘 사는 중국인들이 오는 곳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캐나다 자체가 다민족 국가여서 그런지 많은 나라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었다. 한국 사람 역시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캐나다로 이민을 많이 가는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민 가기가 더 수월했다. 그리고 미국보다 인종차별이 적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캐나다를 더 선호했는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나라도 거리를 돌아다니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동남아에서 오신 분들이. 우리나라도 캐나다처럼 다양한 민족의 나라로 되는 것일까. 단일민족을 외쳤던 나라에서. 이미 우리나라 산업 구조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비중이 대체 불가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제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다만 그들이 가지고 올 종교가 걱정될 뿐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궁금하다.


캐나다에서의 관광 포인트는 역시 나이아가라 폭포였다. 방송과 책에서 봤던 그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 보트에서 우비를 걸쳐 입고 폭포 아래를 지나갈 때 일으키는 물보라는 장관이었다. 솔직히 물보라가 너무 세서 잘 쳐다볼 수도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살짝 떠서 쳐다볼 뿐이었다. 차라리 멀리서 봤던 폭포가 더 매력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것은 경험이었다. 나이아가라 폭포 아래까지 가서 물보라를 직접 맞았다는 경험. 여행의 백미다. 방송에서 보고, 책에서 읽고 말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리고 그 느낌이 있었기에 이렇게 글도 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경험. 정말 누리고 싶은 경험이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진실되게 느꼈던 경험. 인생의 소중한 간증이 될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하나님을 정말 안 찾을 수가 없었다. 거리를 돌아다닐 때도, 무언가를 먹을 때도, 하루 종일 기도하며 다녔다. 왜 그랬을까. 치통이 왔기 때문이다. 허기를 때우기 위해 먹었던 스니커즈 초코바. 그런데 먹고 나니 오른쪽 아래 어금니가 미친 듯이 아파왔다.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아픔. 이빨을 뽑고 싶을 정도였다.


기도하며 걸었다. 가만히 있을 때는 참을만했는데 물을 마실 때나, 무언가를 먹을 때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치통의 무서움을 처음 알았다. 그래도 여행기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병원을 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다. 참을 수 밖에. 기도하며 참을 수 밖에는 없었다.


덕분에 여행하는 내내 하나님과 대화하며 걸었다. 이빨이 너무 아프니 안 아프게 해 달라는 기도. 감사하게도 1박을 머문 한인민박 집에서 게보린을 얻었다. 나는 게보린이 머리 아플 때 먹는 거지, 진통제 효과가 있는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어떻게 한인민박 집에 게보린이 있었을까. 하나님의 은혜였다. 어떤 선교지 보다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걸었던 캐나다. 잊을 수 없는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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