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자란다.
어제까지 장맛비와 함께 강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습니다. 사실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지도 모를 만큼, 저와 아이는 오늘 열릴 학폭 심의위원회에 온통 신경이 쏠려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일어난 사건이 벌써 수개월 전의 일이 되었지만, 저는 아이에게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미리 준비하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냐며 짜증을 냈습니다. 아이보다 제가 더 걱정하고 예민하게 굴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해 학생 측으로부터 교육청 학폭 심의가 열리기 1주일 전에 쌍방 학폭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학교 측에서는 금요일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학폭 전담 선생님은 쌍방 학폭 신고가 들어왔으며, 다음 주 월요일 오후 3시에 교육청 조사관이 올 예정이니 아이의 참석을 요구했습니다. 쌍방 학폭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조사를 요구하는 학교의 일방적인 요청에 불쾌함을 느꼈습니다.
요즘 쌍방 학폭은 대부분 진행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쌍방 학폭 사건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가해자 측에서 처벌 경감이나 책임 분산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경우는 가해 학생 측에서 사과문을 제출하고, 우리 아이에게 직접 사과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쌍방 학폭을 신청했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습니다. 가해자 측 부모 입장에서는 혹시나 처벌 수위가 높아질 것에 대비해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학폭 심의회가 열리는 학교에 도착하니 아이의 얼굴은 굳어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자체가 처음이기도 했지만, 아이는 원래 긴장을 많이 하는 스타일입니다. 나는 아이의 가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습니다. "긴장할 필요 없어. 거기 계신 분들은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 오신 거야. 네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긴장은 가시지 않는 듯했습니다.
심의 장소에 도착했을 때, 장학사 분이 마중을 나와 주셨습니다. 핸드폰을 반납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앉아 있어 사뭇 놀랐습니다. 아이도 적잖이 놀란 기색이었습니다. 위원장님의 간단한 안내 설명과 함께 심의는 시작되었습니다. 총 여섯 분 중 네 분이 질문을 하셨고, 그중 한 분은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여 내내 신경이 쓰였습니다. 특히 특정 답변에서 우리 아이가 잘못 대답을 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부모 의견을 마지막으로 제시한 후 심의는 끝났습니다.
집에 오는 내내 특정 답변을 유도했던 심의관이 계속 신경 쓰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의를 제기했어야 했나 싶어 자책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아이가 오히려 나를 위로했습니다.
"아빠, 우리 이제 이번 사건은 잊자. 나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 어차피 우리 전학 가기로 했으니까 앞으로 좋은 생각만 하고 싶어."
아이의 말에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시야가 흐려졌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온 뒤, 아이의 학교 문제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다그치기도 했고, 나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애꿎은 아내에게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말 한마디에 모든 아픔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아이는 의연했고, 오히려 제가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한껏 예민해진 나를 아내는 항상 무덤덤하게 위로했습니다.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다 비슷해." 그 말이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직 쌍방 학폭으로 인해 한 번 더 심의를 방문해야 합니다. 아이는 추가 조사에 임해야 하고, 진술서와 학부모 의견서도 작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일들이 더 이상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기 때문입니다. 행여 결과가 우리 쪽에 불리하게 나온다 하더라도 더 이상 걱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가해 학생 나름대로의 주장 역시 의미가 있고, 만약 과정에서 우리 아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처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뜨거운 여름과 함께 우리 가족에게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들, 수고했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