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자란다.
오랜만에 과거의 동료들을 만나면서, 예상치 못한 간극을 느꼈다. 그 간극은 단순히 시간이 지나며 생겨난 물리적인 거리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차이이자,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였다. 과거 회사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며 비슷한 고민을 나눴던 사이였지만, 이제는 각자의 길을 걸어가며 나름대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보호막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부모의 보호막, 학교의 보호막, 그리고 회사의 보호막. 우리는 날것의 세상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기보다는 이 보호막들을 통해 세상을 살아간다. 보호막은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언젠가 그 보호막이 사라졌을 때를 대비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이들은 평생 보호막 안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보호막 안에 있는지 아니면 밖에 있는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창업의 과정에서도 보호막의 존재는 두드러진다. 만약 자신이 창업의 모든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면, 여전히 회사의 보호막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자신이 100% 책임을 지고 창업을 한 사람과는 다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조건 보호막 밖에서의 삶이 더 낫거나, 더 성장한다는 단순한 논리가 아니다. 다만, 보호막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안주하지 않고, 마치 보호막이 없는 것처럼 일을 해 나가는 태도는 분명히 다른 이야기다.
결국 인생은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생존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거나 발전시키는 과정까지 포함된다. 내가 선택한 것들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방법을 찾아가는 것. 우리는 누구나 성인이 된 후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살아간다. 누구나 더 나은 삶을 꿈꾸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갈 수도 있다.
나 역시 창업을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행복감이나 경제적 자유보다 더 많은 부작용을 경험했다. 어쩌면 창업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동료들은 여전히 회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회사라는 보호막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메커니즘이 여전한 것이 부럽기도 하다. 그들이 회사라는 공간에서 오래 버티고 잘 지내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내 삶이 그들보다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 창업도 또 다른 보호막을 만드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보면 모두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인생에서 누가 더 잘 살았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보호막 안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선택한 것들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지며, 굳건히 살아가는 모습에 달려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는 한 비슷하게 살아갈 것이다. 각자가 만들어낸 보호막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려 노력할 것이며, 결국엔 각자의 삶의 조각들이 어떻게 짜 맞춰질지 나중에 판단할 일일 것이다.
때때로 현실이 너무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 잠 못 이루는 밤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것이 눈 녹듯 해결되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보호막이 있든 없든, 자신의 길을 성실히 걸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