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서 시작된 여름의 끝

아빠는 자란다.

by 앵그리파파

오후 1시, 티맵으로 집까지의 시간을 확인했다. 고속도로는 이미 정체 중이었고, 6시까지는 답답한 흐름이 이어질 것 같았다. 7시가 넘어서야 교통 상황이 풀리기 시작했고, 나는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떠나기 전, 아내의 뒷모습과 아이들의 옆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어둠이 더 깊어지기 전에 출발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아빠 갈게"라고 말하자, 큰아이는 조용히 내게 다가와 안겼다. 키도 덩치도 나보다 큰 아이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저 어린아이 같았다. 나는 "아빠는 널 항상 응원해. 사랑한다."라고 속삭였다. 항상 의젓한 둘째도 내 품에 안겼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둠이 빠르게 내려앉았다.


며칠 전, 학교폭력 심의 결과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예상했던 수준의 징계였고, 우리는 그것에 만족했다. 가해 학생에게 큰 처벌을 바라기보다는,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를 원했다. 가해 학생의 학생기록부에 이번 사건이 기재될 것이고, 졸업할 때까지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했다. 물론, 가해 학생의 쌍방 신고로 인해 이번엔 우리 아이가 가해자로서 심의를 받아야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가해 학생의 처벌을 줄이기 위한 얄팍한 수법이었기 때문이다.


학폭 과정과는 별개로, 아이의 전학 문제도 빠르게 처리했다. 피해자라고는 하지만, 지금 학교를 계속 다닐 수는 없었다. 학교라는 곳이 그저 인원이 많은 학원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학교를 옮기는 일은 가족 모두의 생활공간이 바뀌는 것을 의미했고, 그 과정에는 많은 일이 동반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편안하게 학교를 다닐 수만 있다면, 그 모든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내와 나는 개학 전에 전학할 학교를 방문했고, 학교에서 제공한 숙소도 미리 둘러보았다. 강원도 영월까지의 거리는 왕복 7시간이 걸렸다. 그 와중에 회사 일도 처리하며 아이의 전학 문제도 일정에 맞게 해결하고 있었다.


개학을 3일 앞두고, 우리는 영월로의 이사를 준비했다. 최소한의 물건만 챙겨 미리 예약해 둔 1톤 트럭에 실었다. 배정받은 숙소는 펜션이었지만 생각보다 작았다. 다행히 복층 구조라 아이들의 공간을 분리해 줄 수 있었다. 우리 외에도 3~4 가구가 있었고, 그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마 아이들은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귈 것이다. 필요한 음식은 영월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간단히 식사를 했다. 영월의 공기와 풍경은 수도권과 완전히 달랐다. 놀랍게도, 큰아이의 아토피가 영월에서 하루 만에 눈에 띄게 나아졌다.


나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교통 상황이 원활하기만을 기다렸다가 7시가 넘어 출발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내내 국지성 호우가 운전을 방해했지만, 차가 막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당분간 영월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지내기로 했고, 나는 상황을 보고 나중에 합류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가족들과 처음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 이별에 마음이 시큰했고, 울적함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영월에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바람은 간절함으로 다가왔다.


집에 도착하니, 영월의 맑은 공기와는 다른, 무겁고 답답한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텅 빈 집은 나를 더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대충 씻고, 치킨 한 마리를 시켜 소주를 마셨다. 새벽이 되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제 미친 듯이 더웠던 여름도 서서히 끝나가고 있는 걸까. 그렇게 지독했던 모든 문제들도 이제는 해결되는 걸까. 이제, 좋은 일만 남아 있기를. 아내에게서 도착한 ‘잘 도착했어?’ 메시지를 읽으며, 소주 한 잔을 더 들이켰다. 문득, 오늘 밤공기가 조금 더 가볍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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