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의 문턱 앞에서, 나에게는 하나의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로 ‘고졸’이라는 학력.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약점으로 여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포트폴리오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내 노력과 진심이 면접관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라며,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밤을 지새웠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반복하자, 엄마의 눈빛은 점점 매서워졌다. 엄마는 내가 학원을 마치면 곧장 취업해 돈을 벌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여전히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엄마 눈엔 그 모습이 ‘노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쌓이고 쌓인 불만은 어느 날 밤 결국 터지고 말았다. 평소처럼 방에서 작업 중인데, 거실 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비틀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술에 취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건데! 지금 당장 그 컴퓨터 부숴버릴 거야!”
순간, 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망치를 든 엄마가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의 팔을 붙잡았다. 격렬하게 망치를 빼앗으려 몸싸움을 벌였고, 간신히 문을 닫아걸고 방 안에 주저앉았다. 이어지는 쾅쾅, 문을 내리치는 소리에 손이 떨렸다. 문이 부서지는 건 아닐까 겁이 났고, 휴대폰을 꼭 쥔 채 조용히 숨을 죽였다. 한참 뒤 소리가 멎고 정적이 찾아왔지만,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렸다.
다음 날 아침, 방문 한쪽에는 깊게 파인 망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밤이 꿈이 아니었음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엄마의 남자 문제였다. 어느 날, 우리 동네에 지하철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말이 돌며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90년대 초, 2천만 원에 산 집은 어느새 1억 원 가까이 됐다. 엄마는 집을 팔았고, 우리는 그 집에 전세로 남았다.
남은 돈으로 엄마는 가게를 크게 차렸다. 그러면서 ‘동업자’라며 낯선 아저씨를 데려왔다. 개업 후 얼마간은 장사가 잘 되는 듯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손님은 줄었고, 가게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았다. 엄마와 아저씨는 어떻게든 가게를 유지해 보려 애썼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가끔 가게에 들를 때면, 엄마와 아저씨의 지나치게 다정한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설마, 아니겠지 고개를 돌렸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후 두 사람은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엄마는 우리 집 안방에서 그 아저씨와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그는 아내와 사이가 나빠 집을 나왔다고 했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유부남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분노를 터뜨려 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건 비난뿐이었다. "내게 힘이 되는 사람인데, 왜 너는 이해를 못 하니." 엄마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만나면 되잖아"라는 내 말에도, 엄마는 "내 집인데 왜 밖에서 만나야 하느냐"라며 소리쳤다. 나는 점점 그 집이 숨 막혔고,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서 울먹이는 전화가 걸려왔다. 식당으로 급히 달려가 보니, 테이블과 의자가 엉망이었고 엄마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그 아저씨에게 맞았다는 말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의자를 들고 그에게 던졌고, 알고 있는 모든 욕을 퍼부었다. 엄마를 부축해 의자에 앉히고, 경찰을 불렀다.
경찰이 도착하고, 가게 앞엔 어느새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경찰차 안에서 엄마는 "절대 봐주지 않을 거야. 고소할 거고, 이번엔 정말 끝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서에 도착하자, 엄마는 바로 말을 바꿨다. 그 아저씨는 금세 풀려났고, 다시 우리 집에 드나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엄마를 걱정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반드시 그 집을 떠나겠다고.
내 손에 쥔 돈은 얼마 없었다. 보증금이 없어 월세방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고시텔밖엔 선택지가 없었다. 다행히 고시텔은 작지만 샤워 가능한 개인 화장실이 있는 방이었다. 지하철역과 가까운 곳, 바깥 창이 있는 방을 조금 무리해서 골랐다. A4 용지만 한 작은 창이지만, 바람 한 점 안 들어오는 방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첫 달 방세를 내고 나니 남은 돈은 고작 두 달 치 방세 정도였다. 나는 곧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고시텔 근처 치킨집에서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일했고, 낮에는 노트북을 펼쳐 포트폴리오 작업에 몰두했다. 식사는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 고시텔에서 제공하는 밥과 라면, 김치로 해결했다. 가끔 치킨집 사장님이 손님이 남긴 치킨을 챙겨 주시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그야말로 축제였다.
생각보다 고시텔 생활은 나와 잘 맞았다. 평소 게으른 나에게는 작은 공간이 딱이었다. 원하는 물건이 손만 뻗으면 닿고 청소와 정리 정돈이 10분이면 끝났다. 엄마와 살던 집에서는 월급의 절반을 줘도 에어컨 하나 마음대로 켤 수 없었는데, 고시텔에서는 눈치 볼 필요 없이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겨울엔 외풍도 없어 방 안은 하루 종일 따뜻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고시원이나 고시텔을 극 중 인물의 가장 암울하고 희망 없는 삶의 배경으로 그린다. 하지만 내 경우는 정반대였다. 3평 남짓한 그 공간에서 나는 조용히 휴식했고, 희망찬 미래를 꿈꿨다.
오래도록 정성 들여 만든 포트폴리오를 완성해 디자인 회사들에 지원했다. ‘고졸’이라는 조건 때문에 서류에서 탈락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여러 곳에서 면접 요청이 왔고, 결국 나는 그중 한 회사에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