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공장에서 나를 찍어내다

by 앙또아


내가 합격한 곳은 작은 문구 회사였다. 직원 수는 열 명도 채 되지 않았고, 사무실은 오래된 상가 건물 1층의 아담한 공간이었다. 규모도, 환경도 화려하진 않았지만, 내가 그린 그림이 공책이나 다이어리, 필통 같은 문구로 만들어져 누군가의 일상 속에 스며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나는 그 설렘 하나만으로 그곳에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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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팀의 막내였던 나는 매일 가장 먼저 출근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청소였다. 책상 위에 흩어진 자료와 샘플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먼지가 쌓인 키보드 사이사이를 털어냈다. 바닥은 구석구석 빗자루로 쓸고, 싱크대에 쌓인 머그컵을 하나씩 정리했다.


겨울이면 유독 일이 더 힘들어졌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찬물에 손을 담근 채 설거지를 하다 보면 손끝이 금세 얼어붙는 듯 아려왔다. 컵을 문지르다 말고 손을 털며 입김을 불어넣고, 다시 찬물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사무실이 깔끔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매일이 배움의 연속이었다.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일엔 익숙했지만, 그 그림이 실제 제품으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전혀 알지 못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을 만큼, 나는 모든 게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옆자리 대리님의 조언을 들으며, 선배들이 만든 샘플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작업을 이어갔지만, 실수는 끊이질 않았다. 공책 하나, 스티커 하나를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섬세했다. 디자인은 단지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용도와 비용, 생산 방식까지 모두 고려해 설계해야 하는 일이었다.


거의 매일, 나는 팀장님께 꾸지람을 들었다. 나 혼자 혼나는 건 괜찮았다. 하지만 나를 도와주시던 대리님까지 함께 질책을 받을 때면,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팀장님은 까다로운 동시에, 일에 있어선 누구보다 뜨거운 사람이었다. 그의 눈높이는 늘 높았고, 나는 그 기대에 닿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시안을 들고 갈 때마다 돌아오는 말은 비슷했다.


“많이 생각해 본 거야? 나는 아침에 세수할 때도, 밥 먹을 때도, 잠들기 전까지도 디자인 생각뿐이야.”


하지만 나는, 그저 ‘회사에서만’ 일하고 싶었다. 퇴근 후엔 쉬고 싶었고, 밥을 먹을 땐 그저 밥맛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를 일로 채우되, 나머지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로 살아가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며 업무에 익숙해지자, 혼나는 일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대신 ‘비교’가 시작됐다. 팀장님은 동료들의 야근과 성과를 예로 들며, 내게 자극을 주려 했다.


“다른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밤늦게까지 남아서 일해.”

“여기 직원들은 입사하자마자 디자인한 제품이 바로 잘 팔렸어.”


그 말들은 칭찬도, 격려도 아니었고, 점점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게다가 늘 따뜻한 말로 나를 다독여주시던 대리님마저 퇴사하자,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첫 디자인 회사’라는 타이틀이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직을 위해서라도 조금만 더 버텨보자며, 스스로를 달래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렇게 결국, 1년을 채우고 회사를 떠났다.


두 번째 회사는 인터넷 기반의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이었다. 나는 콘텐츠팀에 합류했다.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만든 이미지를 판매하는 부서였고, 입사 첫날부터 정신이 없었다. 내 이름이 적힌 명함을 들고 회사 곳곳을 돌며 200명에 가까운 직원들과 인사를 나눠야 했다. 하루가 끝날 무렵엔 진이 다 빠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일 자체는 즐거웠다. 그려야 할 그림에 특별한 제한이 없었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사고 싶을 만한 그림이면 무엇이든 가능했다. 나는 주로 교육 관련 콘텐츠를 그렸다. 기본급 외에도 그림 판매에 따른 성과급이 있었고, 야근 수당까지 챙겨주는 회사였다. 팀이 급속도로 성장하던 시기에 입사한 덕분에 분위기는 활기찼고, 월급도 넉넉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회사는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싶어 했고, 외국 지사를 설립했다. 한국 디자이너들의 그림이 잘 팔리면, 외국 지사에서 그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결과, 한국 디자이너들의 판매율이 떨어졌고, 성과급도 점점 줄어들었다. 직원들의 반발에도 회사는 "그림은 회사에 귀속된 자산이므로 더는 이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라고 했다.


마음이 돌아선 디자이너들은 하나둘 회사를 떠났고, 남은 이들은 매일 정해진 수량의 그림을 채워 넣는 기계처럼 변해갔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4년이 넘도록 회사를 다니다 보니, 내가 무엇을 그리든 이미 비슷한 그림이 있었다. 시장조사를 하고 창의력을 발휘하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이미 열정은 다 타버린 후였다. 내 작업은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를 흘러가는 생산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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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일상이 끝없이 이어졌다. 회사에선 늘 비슷한 디자인 요청이 반복됐고, 책상 앞에 앉아 하루 종일 타블렛 펜을 움직이는 일이 전부였다. 퇴근 후엔 고시텔에 돌아와 대충 저녁을 때우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들여다보다 잠드는 날들의 연속. 마치 복사 붙여넣기 된 것처럼,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매일같이 반복됐다.


그렇게 무뎌진 감정 속에서 하루를 흘려보내던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같이 동호회 나가볼래? 스윙댄스 동호회야.”


그 한마디가, 아주 작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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