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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 희 Nov 24. 2024

주연이 처음 이라서요.

서로의 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엄마의 자리에 공석이 생겼고 하나뿐인 아들을 다 키워놓은 할머니가 다시 아이 둘을 맡게 됐다. 할머니는 북에서 내려와 홀로 외아들을 키운 분 이셨다. 감정으로 기록된 기억 속에는 ‘딸기는 아빠먼저’라는 한이 서럽게 맺혀 있을 정도로 손녀인 나보다 자신의 아들을 끔찍하게 생각했다. 할머니는 티를 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아빠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은 눈을 가려도 볼 수 있었다.


아빠는 무뚝뚝했다. 엄마를 대신해 운동회를 오거나 우산을 챙겨주는 남성이 아니었다. 내가 학교에서 어떤 성격으로 지내는지, 반에서 몇 등을 하는지 미래에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묻지 않았다. 수족관을 가거나 롯데월드를 가는 주말을 함께 보낸 적은 없지만 기념일은 빼먹지 않고 챙기는 사람이었고 현금으로 뽑은 학원비를 봉투에 넣는 일을 한 번도 잊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빠는 운동선수 치고는 늦은 나이인 중학교 3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재능과 연습량으로 3년 만에 대학을 고를 수 있을 만큼의 선수로 성장했고 대학교에 가서는 에이스를 유지하며 실업팀에서는 뉴스에 나올 정도로 승리를 이끈 선수로 꽤 주목을 받았다. 이후 은행원으로 이직을 하시고 오랫동안 근무하셨다. 피해 주는 걸 누구보다 싫어하는 아빠는 운동만 하던 사람이었기에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했다. 중, 고등학생이 있는 우리 집 식탁 위 전등은 학생이 아니라 직장인의 자리였다.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을 갈 때 길을 밝혀주던 그 불빛, 숙여진 아빠의 얼굴, 우리는 이런 일에 대하여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둘만의 시간을 보낸 건 서울의 도로가 개교기념일의 교실처럼 텅 비던 2021년 추석, 6인실 병실에서 이루어졌다. 아빠 뱃속에서 살던 암덩이는 전 세계가 마스크를 쓴 채로 이 전의 삶을 되짚어가는 도중에 발견됐다. 병실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는 상황에서 오빠와 나, 둘 중 한 명이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아빠는 외동아들이고 우리는 핵가족이다. 모든 조명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 당시 <검은 태양> 이란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었고 촬영 중에 대본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모든 배우들이 스탠바이를 하고 있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빠를 혼자 보낼 수 없었다.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아빠를 밀어낼 불이익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다행히 소속사와 연출부에서 우선적인 선택을 지지해 주었고 그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짐을 쌀 수 있었다. 이렇게 아빠와 둘 만의 첫.. 목적지는 암센터 8층으로 배정받았다.


아빠는 생각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었다. 수술 직후, 마취가 깨는 것과 동시에 찾아오는 통증에 1분에 한 번씩 진통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도 짜증 같은 걸 내지 않았다. 어쩌면 고통에서 깨어나는 아픔을 대신 느낄 수가 없어서 보호자가 더 고생한다는 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콩나물 머리처럼 발이 삐져나오는 간이침대에서도 잘 자는 편이었고 다른 보호자분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공용냉장고에는 먹을 게 넘쳐났고 원 없이 책을 읽었다. 아빠는 하루라도 빨리 회사에 복귀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고 그 의지는 누워있는 자신을 침대 밖으로 나오게 하는 슈퍼파워를 발산시켰다. 아빠는 언제나 내 걱정을 했다. 나의 불편함과 고행을 마음 아파했고 함께 해줘서 고마워하며 자신이 암에 걸린 걸 미안해했다. 우리는 자주 손을 잡았고 눈을 마주쳤다. 서로의 필요함을 눈치챘다. 암덩어리 때문에 아빠를 향한 사랑을 꺼내어 볼 수 있었다. 아빠의 소변을 받는 일도 마르는 입 안을 닦아내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수술실 앞에서 보냈던 초조함의 시간을 기억한다. 세상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오롯이 나와 아빠 그리고 '신' 밖에 없는 그 순간의 초침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아빠는 내기라도 한 듯 정말로 한 달 만에 회사로 복귀했다. 출근을 하면서 항암치료를 받았고 문제없이 3년 차를 맞이했다. 그리고 70세가 되던 그 해, 은퇴, 물러나는 것, 내려오는 것, 노동이 끝나는 것, 기약 없는 쉼, 주말의 연속, 할 수 있지만 시켜주지 않는 것, 은퇴, 넥타이를 풀어 장롱 깊숙한 곳에 간직해야만 하는 그것, 은퇴를 맞이했다.


당사자의 당혹감만큼이나 자식으로서의 부담감도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어져 아빠의 제2의 인생을 인수인계받은 것 같았다. 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책임감을 패기로 선보였다. 그게 나의 의무라 여기며 이게 좋다더라 이래야 한다더라 하며 아빠를 정신없게 했다. 걱정과 의무감이란 명패를 달고 내리막 길에 선 사람의 등을 떠밀었다. 나는 더 빨리 내려가라 재촉했다.


 방에서 주방으로 출근을 하고 거실이자 침실인 방으로 퇴근을 하는 일상, 진짜 한마디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일상, 티브이와 붙어지내는 허리 아픈 일상에 한 명은 적응을 해야 했고 다른 한 명은 적응하기를 막아야 했다. 우리는 각자의 적응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독립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이 됐다.






연기를 할 때 더 빛이 나는 배우가 있다. 촬영을 하면서도 대놓고 입을 벌리거나 속에서 입을 벌리게 하는 연기를 볼 때가 있다. 그리고 온몸을 굳게 만드는 배우도 있다. 바로 이병헌 선배님이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을 찍을 당시 보여주신 배우로서의 예측불가한 선택, 에너지, 몰입감은 공기를 바꾸는 동시에 존재의 시간까지 멈추게 했다. 뿐만 아니라 촬영 중간중간에 누구라도 섞일 수 있을 장난과 농담으로 어려운 분위기의 짐을 덜어냈고 비중이 작은 인물의 아이디어도 경청하시며 의견을 보태어 힘을 실어주셨다. ‘존중’과 ‘넓음’의 여유는 감투를 얻는다고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건 아니었다. '주연이 된다면 나도 꼭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꿈을 키웠다.


훔치고 싶은 다른 이의 현재가 그 사람의 인생에서는 ‘가을’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전까지 상업에서 주연을 맡은 적이 없었던 나는 긴 호흡을 이끄는 일에 설렘과 책임감, 잘하고 싶은 욕심과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나날이 더해졌다. 첫 대본 리딩날 돌아온 건 매정한 절망감이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하필 실력에서 허물을 벗어던졌다. 이런 일이야 흔하니 그렇다 쳐도 경력과 나이 둘 다가 중간 사이에 껴버린 입장은 그럴 수 없었다. 나만 모르는 새 세상이 뒤바뀐 것 마냥 낯설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적당함을 아는 것은 현명함이고 눈치는 적극적이어야 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공부보다도 어려운 숙제이고 자연스러움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일이 아니었다. 학습이 필요했다. 나이가 드는 일에 경력이 쌓여가는 일에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또 준비를 해야 하는지 예습이 필요했다. 깜깜한 앞길에 작은 불씨를 놓아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에게 학습지를 건네어주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며 연락처를 뒤적였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어른의 존재의 체취를 찾아갔다.


무의식 속에 잘 해내고 싶다는 섣부른 생각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완벽함을 요하지는 않았다. 내 마음을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엇을 고민하며 알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은 섣부른 질문이 애매함을 마주하게 했다. 쓰이는 단어는 생각의 꽁무니를 쫓을 뿐이었고 말은 그조차도 어려울 때가 많았다.  답답함은 쌓여갔다. 그런 날이 이어지던 중에 아빠와 함께 점심을 하고는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찾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침묵이 불편한 지금을 채우기 위한 각자의 패를 내놓으며 아빠는 티브이 속의 세상이야기를 반복했고 나는 일상의 이야기를 늘어놨다. 우리의 영혼이 마주하는 순간은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툭하고 속에 있던 고민이 튀어나왔다. 본식이 스몰토크여야 하는 자리에 갑자기 시키지도 않은 메뉴가 나온 것처럼 속마음을 꺼내는 일은 당혹스러웠다. 비집어 나온 열망이 난생처음으로 인생의 고민을 아빠 앞에 올려놓게 했다. 아빠는 진심으로 나의 말들을 들어주셨다. 마치 또 다른 자신이 말을 거는 것처럼 잔잔한 호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처럼 한 명의 '어른'이 내 말에 경청을 하고 있었다.








“농구는 팀 플레이잖아. 같이 자고 먹고.. 단합도 중요하고, 근데 아빠는 그 생활이 어렵지 않았어? 아빠는 어떤 주장이었어?”


아빠도 자신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처음 얘기하는 이 순간에 다른 느낌을 받았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빠는 신입생시절 선배들의 속옷이며 양말까지 세탁을 해야 하는 게 정말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주장이 되자마자 바로 ‘내 일을 각자 하자’하며 팀 내 질서를 바꿨다고 했다.


“대신 각자의 일을 잘하자고 했어. 농구, 우리가 해야 할 게 그것밖에 더 있어? "


“깔끔하고 좋다. 각자의 일을 하자..  눈치도 좀 필요한 것 같아. 돈도 쓸 때는 써야 하고.. 어려워”


“그렇지, 그런 게 센스야. 근데 참 어려워. 진짜 어려운 일이야..”








우리는 서로에게 찾아왔던 혹은 미래에 찾아올 '입장' 대한 생각을 공유했다. 나는 아빠의 답변이 좋았다. 오롯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줄 뿐이지만 아빠의 말속에는 조언이나 강요와 같은 권위의 냄새가 묻어나지 않았다. 공감하는 동시에 자신의 과거에 다녀오는 머무름이 있는 대답이 포옹 같았다. 결론을 내리지 않아 좋았다. 스스로 찾아갈 틈을 넘겨주는 모습에서 아빠의 세월이 보였다. 넓이가 있는 어른으로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우리 아빠라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리고 이 나무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어떤 영양분을 받고 컸을까? 누구의 빛을 받고 어떤 일의 비바람을 받았을까? 나의 아빠가 아니라 아빠의 역할 뒤에 있는 한 사람이 삶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아빠는 인정욕구 같은 거 없었어? 농구도 경쟁이 심하잖아”


“있었지, 많았지. 왜 없겠어.”


“아빠는 어떻게 풀었어?”


“연습. 진짜 죽어라 연습만 했어. 저녁 10시가 지나면 코트장에 불을 다 끄거든, 그럼 촛불을 켜놓고 연습했어.”


“… 그래서? 결국 이뤘어?”




우리는 2시간이 지난 뒤에야 카페에서 나올 수 있었다. 아빠와 나는 대화를 나누었다. 영혼이 마주하는 시간, 각자의 속마음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서로가 가까워지는 공간 속에서 눈을 마주했다. 나는 아빠가 왜 은퇴 후의 일상을 그렇게나 못 견뎌하셨는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내리막길 위에서 왜 그토록 상한 자존심을 내비쳤는지 이해하게 됐다. 아빠의 삶을 그릴 수 있게 되자 아빠 만의 사랑방식이 보였다. 무뚝뚝 함 뒤에 묻혀있던 아빠만의 보살핌이 드러났다. 학원비 내는 날을 달력에 적어놓으며 만취한 날에도 잊지 않고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던 책임감, 우리 몰래 학교에 찾아와 선생님들을 만났던 관심, 녹음기에 교과서를 담아 출퇴근 길에서도 들으며 진급을 해야만 했던 이유, 이 모든 게 우리를 위하는 일이었음을 아빠의 사랑이었음을 하나씩 알게 됐다. 우리가 태어난 그날부터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걸 아빠의 인생을 통해 나는 확인했다.


우리는 이후로 베프가 됐다. 알바가 끝나면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 위에서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공유한다. 어느덧 은퇴 1년 차가 된 아빠, 40년간 출근을 하던 아빠에게 돈을 벌지 않는 일은 평생을 지닌 정체성을 잃는 일과 같았을 거다. 아빠에게 현실을 받아들일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 세월의 반이 걸린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해도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지금 이대로 아빠 옆에 머물기로 다짐했다. 제2의 인생을 화려하게 살도록 독려하는 대신 아빠의 내리막길 위에서 함께 발걸음을 맞추면서 동행하는 친구로서 묵묵하게 걸어 볼 생각이다. 아빠가 내게 그랬듯이.


매를 먼저 맞은 탓에 촬영을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 비결은 역시 연습과 각자의 일을 잘하는 것 그리고 가벼워진 마음이다. 인생에서는 사계절이 순환한다. 시작과 처음은 어디에서나 언제나 존재한다. 나는 그걸 '봄'이라 부르겠다. 봄의 시작은 얼어붙은 땅 아래서부터다. 따스운 햇살이 땅을 녹일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바득바득 힘을 내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은 곳에서부터 활발히 시작된다. 졸업의 겨울이 지나면 입학의 봄이 오듯 이별이란 겨울이 지나면 외로움이란 봄이 온다. 입학과 외로움은 새로운 시작이다. 아빠는 은퇴라는 계절에서 봄을 보내는 중이다.








제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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