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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by 안 희




우리 아빠는 70세에 백수가 됐다. “축하해요 아빠. 이제 늦잠도 자고 여행도 다니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겠다.” 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그는 힘이 빠져 보였다.


아빠의 은퇴는 우리 모두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단순해진 일상에 적응을 해야 했지만 갈 곳이 사라진 하루하루를 견디기 어려워했다. 출근을 한다는 건 곧 그 자신을 증명하는 일이었으니까. 그가 무료함에 지쳐갈수록 내 걱정은 잔소리로 변해갔다. “어디 일 할 곳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빠는 매일 이렇게 말했다.



다시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때는 데뷔 10년이 지난해였다. 내가 하는 연기가 부끄럽고 스텝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던 시기에 이야기를 향한 갈망까지 있었다. 내 실력으로는 그 정도의 역할을 맡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자 마음을 먹었다.


2년 후, 생애 첫 장편영화 주연을 맡게 됐다. 나는 이병헌 선배님처럼 이 작품을 끝내고 싶었다. 그는 주인공은 그 의미를 넘은 의무가 있다는 걸 알려준 배우였다. 현장에서 본 선배님은 연기는 당연하고 분위기 메이커와 소통능력까지 주연 더웠다. 십 분의 일이라도 따라가면 성공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첫 경험이라는 게 문제였다.




헬스장과 끼니를 챙기기 위한 외출이 전부인 아빠를 꺼내주는 일은 내 몫이었다.


“아빠. 불고기 먹으러 갈까?”

“보쌈 먹고 싶은데 내일 점심 콜?”

“좋지~”


아빠는 어느 순간부터 “딸이랑 먹으니까 더 맛있네.”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우리는 밥을 먹고 2차로 카페에 갔다. 평소 말을 나눌 사람이 없던 아빠는 예전보다 많은 말을 하셨다. 대부분 즐겨 보는 프로그램 얘기였다. 나는 갑자기 아빠에게 묻고 싶어졌다.


“아빠는 처음 주장을 맡았을 때 어땠어?”


은행에 근무하시기 전까지 농구선수로 청년시절을 보낸 아빠였다. 재능에 노력까지 갖춘 그는 당시 신문에도 나올 만큼 활약했고 MVP 선수로 뽑혀 텔레비전에도 나왔다고 했다. 아빠는 그 시절을 들려줬다. 그는 잘 나가던 한 때를 자랑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럼 아빠는 인정욕구 같은 거 없었어? 농구도 경쟁이 심하잖아.”

“있었지, 왜 없겠어. 많았지.”

“어떻게 풀었어? ”

“연습. 죽어라 연습만 했지. 저녁 10시가 되면 코트장에 불이 다 꺼져. 그럼 촛불 갖다 놓고 또 하는 거야.”


아빠를 더 알게 된 것 같아서, 고민이 해결되어서, 인생의 훌륭한 선배가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모든 걸 처음 겪는다. 부모가 되는 것도 은퇴도 딸의 역할도 연애도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나는 눈앞에 다가온 무게감을 ‘처음이니까~’로 고쳐쓰기로 했다. '그래, 처음이니까 급하지 않아도 돼. 잘하지 않아도 돼.'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해가 질 때쯤 카페에서 나왔다. “또 봐!” 쿨 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아빠의 딸답게 연습실의 불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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