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의 기술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꽤 부끄러워한다. 특히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가 있으면 내 순서를 기다리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태연한 듯 말은 할 수 있지만 붉어지는 볼은 숨길 수가 없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카메라 앞이나 무대 위에서 또는 오디션장에서도 연기가 시작되면 심장이 교체되는 타고난 특성을 가지고 태어난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연기를 하는 중간에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미아가 오디션을 보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심사위원이 갑자기 전화를 받고 연기 중간에 말을 끊으며 미아의 영혼을 미친 듯이 흔들어 놓던 그 최악의 장면!!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도 똑같구나."
물론 그 정도로 무례하게 전화를 받은 사람은 없지만 집중을 방해하는 빌런은 곳곳에 존재한다. 날씨와 컨디션, ‘하필 오늘 이 말을 했어야 했니?’ 하는 이별의 통보 같은 불가항력적인 요인들도 있고 내면에 잠자고 있는 욕망, 욕심, 자만심, 타인의 욕망처럼 통제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이것만 써도 글이 완성될 정도로 뛰어넘어야 할 허들은 수두룩하다, 이 시대를 ‘사는 일’ 속에서 겪어야 할 어려움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사는 걸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연기를 멈추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해내야만 한다. 그게 배우의 몫이다.
배우가 속하는 일들은 전부 공동작업이다. 작품이 정해지면 모든 사람들이 같은 목적지를 향한 항해를 시작한다. 우리가 탄 배에는 엔진이 없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내야 한다. 그래야 배가 움직인다. 그 속에서 각자가 어려움을 만나고 해결하며 너와 내가 올라 탄 ‘작품’이라는 배를 책임진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작업은 각 파트의 색들이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아름답다. 이렇게 영화와 연극이 만들어진다.
2024년 5월, 아직은 찬 기운이 깃든 봄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던 어느 날, 외곽에 있는 넓은 저수지 한 곳에 내가 탑승한 '배'가 정박해 있었다. 이 날은 작품 속 중요한 장면을 촬영하는 날이었다. 한 인물의 욕망이 드디어 가면을 벗으면서 감정라인이 고조되며 영화 속 흐름에 중요한 선택이 결정되는 클라이맥스의 씬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파트에서 이 장면을 가장 고심하며 만만의 준비를 했다. 이상하게 영화 현장은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같은 일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걱정 없다. 현장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유에서 무도 만들어 버리는 감쪽같은 마법을 부리는 마법사들이 있으니까.
우리들의 첫 번째 난관은 '어두움'이었다. 해가 내려가자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을 점령했다. 조명팀은 5시간 동안 마법을 부려 거대한 기둥 끝에 태양을 만들었다. 두 번째 난관은 결승전 같은 거대한 놈이었는데 바로 '그림자'였다. 복잡한 동선과 열약한 조건 속에서 카메라는 그림자와 싸워야 했고 카메라팀은 한쪽에 카메라의 무게를 짊어지고 한참을 움직이며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밤은 깊어갔고 겨울이 온 것처럼 몸이 떨렸다. 어째서 촬영장의 기온은 -10인지, 봄에도 롱패딩은 필수다. 모든 사람들이 정신을 붙들기 위해 각자가 가진 특기를 꺼내야 했다. 그 시각 나는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다. 예상보다도 훨씬 길어진 지연으로 배우들에게 충분한 리허설과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차감되어 갔다. 동선은 복잡했고 분위기는 까다로웠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내가 배우로서 해야 할 몫은 가면을 벗고 욕망을 드러내는 연기를 기술적 문제를 만들지 않으며 실수 없이 해내는 것, 액션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는 것,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인물을 진정성과 충동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 그뿐이었다.
“어떻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세요?”
배우라는 직업을 소개하면 종종 이런 질문들을 보내온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다소 어렵지 않다는 말로 가볍게 답을 하는 편이지만 사실 마음속에서 내뱉는 답은 따로 있다.
현장은 전쟁터를 비유할 만큼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터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이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제 몫을 해낸다는 건 단순히 대담한 성격만으로 될 수 있는 과정이 아니라는 걸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됐다. ‘앞에서’에 있던 무게가 ‘어떻게’로 이동을 하면 과정이 생긴다. '어떻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몫을 해낼 것인가'의 질문은 너와 내가 탑승한 그 배에서 잉태하여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주변의 사람과 일상을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해 움직이는 설치 미술에 담아내는 양정욱 작가님은 한 인터뷰에서 기술은 ‘편지’라고 표현했다.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마음을 너무너무 표현하고 싶어서 글을 쓰지만 글이 너무 엉망이라 매일매일 글씨를 교정하고 단어를 골라보고 재밌는 말을 고민하며 계속 연구해서 편지를 쓰는 일, 그 과정에서 편지를 잘 쓰게 되는 것, 그게 기술이라고 말한다. 작가님에게 기술이 사랑으로 탄생되는 것처럼 나에게는 기술이 공동의 작업, '우리' 에게서 탄생했다.
특히나 우리 쪽 분야에서는 기술이 받는 오해가 많다. 기술로 접근하는 연기는 진정성이 없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나는 내 몫을 책임지기 위해 기술을 터득한다. '키네스 피어.' 자신의 위치를 바꾸지 않고 손이 닿는 범위, 내 공간 이란 의미를 가진 움직임을 분석할 때 쓰는 용어이다. '라반'이라는 연기 메소드를 훈련할 때 처음으로 키네스 피어를 경험했다. 나를 중심으로 손이 닿는 범위 안에 원을 그린 뒤 그 안에 상상으로 양수를 가득 채운다. 나는 태아가 된다. 오직 그 품에서 나는 아무런 걱정이 없는 포근한 상태, 수용받을 수 있는 안전한 상태로 존재한다. 인간이 유한한 생을 살면서 만전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을 가상으로 만들어 언제라도 내가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영역이 생기는 것, 이 기술을 통해 어떤 외부의 방해에도 나는 내 영역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며 자유롭게 연기를 할 수 있는 집중력과 자유로움 자신감을 얻게 된다. 배우로서 진정성과 충동을 열렬히 사랑하며 원하기 때문에 이 마음으로 기술을 몸에 새긴다. 비록 하루하루 티가 나지 않는 과정이지만 이 과정 속에서 삶을 배우며 일상이 변하고 있기에 순조로운 항행이라는 느낌이 든다. 키네스피어는 일상에도 나타난다. 침묵이 보장받지 못할 때, 너와 나 사이에 거리가 필요할 때, 소음과 넘치는 쓰레기더미에서 숨이 필요할 때, 잠에 들기 전에도, 소화가 필요할 때에도. 갓생과 자기 착취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할 만큼 틈이 없는 현실에서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영역을 만드는 일은 필수가 되어버렸다.
그날 우리는 모두가 자신들의 몫을 해냈고 기쁜 마음으로 최종 목적지에 함께 도착했다. 아마 배를 앞으로 몰고 간 우리들의 엔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에게 쌓이고 있던 기술의 형태, 노력의 에너지가 아니었을까.
@커버이미지 출처 : https://blog.naver.com/dks900409/221759139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