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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런 일들을 해로운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않는다면,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7권 14.

by 안현진

하지만 내가 그런 일들을 해로운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해를 입지 않고, 내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7권 14 중에서



우리 집 이른 기상자들은 둘째와 셋째다.

주말에 해당하는 어제오늘에 한해서다.

더 자도 될 텐데, 평일에는 깨워야 일어나더니, 늦잠 자도 되는 날엔 왜 일찍 일어나는 것인가.

“잘 잤어?” 보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더 자~”가 먼저 나온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라 아쉽다.

한 명은 한 명을 깨우고, 둘은 나머지 한 명을 깨운다.

차분한 아침을 보내고 싶은데 옆에선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아이 이름을 부르다가 그 뒤에 느낌표가 붙는 건 순식간이다.

“윤우야! 조금만 조용히 해줄래! 형아도 아직 자고 있잖아!”

잘 부딪히는 둘째와 셋째는 티격태격 대다가도 둘이서 깔깔깔 웃으며 논다.

오빠 따라쟁이 은서는 윤우의 우스꽝스러운 말과 행동도 다 따라 한다.

둘이 노는 모습에 나도 따라 웃는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선우는 동생들이 떠드는 소리에 결국 일어났다.

방에서 은서와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은서는 콧물감기에 걸렸다.

바람이 매섭게 불던 금요일, 아이 안고 동사무소에 갔다가 놀이터에서 잠깐 놀았다.

안 들어가려는 걸 춥다고 데려 들어왔다.

그때 감기에 걸린 것 같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이상하게 계속 짜증을 내고 안겨 있으려고 했다.

몸이 안 좋은가 생각하면서도 나도 지쳤던 밤이었다.

그러고 토요일부터 계속 콧물이 나서 훌쩍거리고 있다.

밖에서 내내 놀다가 어두워지면 들어오는 선우, 윤우는 아직 괜찮다.

목이 따끔거리다가도 괜찮아지고, 몸이 안 좋아하다가도 괜찮아진다.

잠바 입고 나가라고 챙기지 않으면 안 춥다며 그냥 나가 버린다.

윤우는 어떻게 노는지 운동화가 금방 닳아버린다.

새 운동화 두 켤레가 6개월을 못 간다.

선우는 운동화가 닳아도 윤우처럼 앞이 다 까지도록 닳지는 않는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일어나고, 감기에 걸리고, 안 걸리고, 운동화가 닳고, 안 닳고 … 이 모든 게 아이들이 잘 크고 있다는 증거다.

나를 제외하고선 모두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아이들이라는 존재가 내게 외부 요인으로서 영향을 미치지만 전혀 해롭지 않다.

오히려 정신 수양,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한 단계 성장시켜 주는 존재들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무해한 존재들에게도 곧장 불길이 치솟는 나지만 이런 나도 받아들인다.

사과와 반성은 빠르게 하니까.

아이들과 북적대다 보면 12월도 금방 지나갈 것 같다.

그 안에서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며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도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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