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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7권 32.

by 안현진

죽음에 대하여. 우리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존재라면, 죽음은 해체이고, 우리가 하나의 통일체라면, 죽음은 소멸이거나 이주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7권 32



아이들이 읽는 책 중에서 ‘내멋대로 ~뽑기’ 시리즈가 있다.

내멋대로 아빠 뽑기, 내멋대로 동생 뽑기, 내멋대로 친구 뽑기, 내멋대로 선생님 뽑기, 내멋대로 행운 뽑기, 내멋대로 초능력 뽑기, 내멋대로 산타 뽑기 ….

집에 있는 책 중 내가 지정한 책으로 열 권씩 읽어 나가다가 아이들이 원하는 문고판 한 권씩 읽기로 바꿨다.

아이들은 며칠째 뽑기 시리즈를 오늘의 책으로 골라서 읽고 있다.

책에 대해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들 생각을 듣다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행운 뽑기를 읽었을 때, 선우라면 어떤 행운을 뽑고 싶냐 물으니 행운은 자기가 만드는 거라고 답했다.

노력도 안 하고 받아쓰기 백 점을 받으면 안 좋다고, 내가 연습해서 받으면 된다고 한다.

《2학년 2반 고백 사건》을 읽었을 때, 선우가 좋아하는 친구를 선우 친구와 같이 좋아하는데 상대방이 선우 친구가 더 좋다고 하면 어떨 거 같냐고 물었었다.

선우는 그건 그 친구 마음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마음은 자기 거라고.

아빠 뽑기를 읽었을 때, 윤우 독서록에 쓰인 내용을 보니 아빠는 자기가 갖고 싶다고 정할 수 없다, 근데 좋은 아빠, 사랑하는 아빠 그런 거는 된다, 나는 나를 사랑해 주는 아빠가 갖고 싶다, 진짜로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라고 쓰여있었다.

어제 등교 전에 갑자기 키를 재보고 싶다고 했다.

벽 한편에 아이들 키를 재고 표시를 해 둔 게 있다.

재어 보니 한 달 사이에 손톱 마디만큼 자라 있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봐도 몸과 생각이 날마다 자라는 아이들과 있으니 멀게 느껴진다.

죽음보다는 생이 더 가깝다 여겨진다.

원자이거나 통일체이거나 해체이거나 소멸이거나 결국엔 살다가 죽음을 맞는다.

짧고도 긴 생을 무엇으로 채우고 사라지느냐가 삶의 의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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