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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Apr 16. 2024

새로운 연결 지점



© elenikoureas, 출처 Unsplash



2022년 3월부터 필사를 하고, 그날 문장에 따른 내 생각을 써 오고 있다. 첫 번째 책은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였다. 365일 문장을 모두 필사한 건 아니지만, 1년째 되던 2023년 3월에 《명상록》 필사를 시작했다.

문장 내용과 단어를 내 일상, 생각과 연결해 글 한 편을 쓴다. 글쓰기가 그렇듯이 술술 써지는 날이 거의 없다. 생각하고, 지우고, 다듬은 끝에 짧은 글 하나를 완성한다. 매일 쓰는 힘을 기르고 글쓰기 연습도 된다. 이렇게 쌓인 글은 나중에 원고를 쓸 때 참고 자료가 되거나 초고의 밑바탕이 되어 준다.      


‘연결 지점’이라는 키워드로 내 블로그에서 검색하니 두 편의 필사 글이 나왔다. 한 편은 2022년 10월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필사하며 쓴 글이고, 한 편은 2023년 10월 《명상록》을 필사하며 쓴 글이다.




© christinhumephoto, 출처 Unsplash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 내 생각이 언제 여기로 흘러가 있었지!' 깜짝깜짝 놀란다. 내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내 마음은 중요한 것도 같고 중요하지 않은 것도 같다. '이런 생각 하나로 내 집중력이 흐트러지다니!' 하며 다시 가다듬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하며 더 깊이 생각에 잠길 때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밖에 내놓은 아이들 운동화 생각이 났다. '어제 들여놓을걸!' 하는 후회를 하며 얼른 안으로 들여놨다. 다행히 많이 젖지는 않았다.

책 읽거나 글을 쓴다고 거실에 앉아 있으면 온갖 사물이 내 눈에 들어온다. 그 사물이 나를 여러 생각으로 데려간다. 지금 읽고 있는 책과 쓰고 있는 글이 연결될 때가 있다.

그 연결 지점이 내 일상을 풍족하게 해 준다. 때로는 여기 있지 않은 생각과 마음이 새로운 생각과 마음을 가지게 하기도 한다.

_2022년 10월 29일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필사하며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둥둥 떠다닌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원하는 일이 어지럽게 섞여 있다. 좋은 일, 안 좋은 일, 혼란스러운 일이 겹쳐 있었던 올해. 남은 두 달여 동안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무얼 하고 싶은 걸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싶었던 해였는데 나는 원하는 만큼 읽고 썼는가. 생각했던 지점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생각하지 못한 변화는 있었다. 엄마로서의 나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도, 내향적인 그냥 나로서도 달라진 점은 있다.

그 변화가 올해의 결과물로서만 봤을 때는 작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땐 큰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나는 선우, 윤우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가 궁금해. 공부 잘하고 이런 걸 떠나서 그냥 잘 자라 있을 것만 같애. 어떤 모습으로 컸을지도 궁금하고, 사춘기가 된 아들과 나는 어떤 대화를 나눌지도 궁금해. 그래서 그때가 기다려져."

내가 말하면서도 '아,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알 때도 있다. 편한 친구 앞에서는 솔직한 마음도 툭툭 튀어나온다. 아이들의 5년 후, 10년 후가 기대되듯 나도 내 모습이 기대되고 궁금하다. 중년, 노년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유년 시절, 학창 시절, 20대, 30대가 모두 연관성을 띠듯이 현재는 인생 후반기와의 연결고리다.

인간은 죽어도 그 업에 따라 생이 반복된다는 불교의 윤회 사상을 믿는다. 내가 언제부터 존재해 왔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생도 잘 살다 가고 싶다. 다음 생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테지만 과거의 내가 현생의 내게 조금은 쌓여있을 거라 생각한다. 기질, 성향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니 지금의 나는 이상하고 예민하고 특이한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그냥 나인 것이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나.

_2023년 10월 28일 《명상록》을 필사하며              




© oandersonrian, 출처 Unsplash



두 편의 필사 글을 읽으며 조금 놀랐다. 잘 써서가 아니라 그 글을 쓸 때 내 마음이 떠올라서다. 1년 사이에 사는 집과 글 쓰는 장소는 달라졌지만, 글을 쓰던 내 모습은 선명히 기억난다. 오늘의 문장을 보며 어떻게 풀어나갈까 이리저리 생각하다 한 자 한 자 적어 나갔다. 모든 글이 완전하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완전에 가까워질 때까지 생각하고 다듬는다.    

 

SNS를 조금만 둘러봐도 글 잘 쓰는 사람도 많고 반응 높은 글도 많다. 내 글은 어떤 쓰임이 있을까? 도움 줄 수 있는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 갔다. 동시에 ‘내 글은 유용하지 않아, 재미가 부족해….’ 자신감도 함께 떨어졌었다.    

  

하지만 과거에 내가 쓴 글이 현재의 내게 용기를 줬다. ‘주저하지 마. 괜찮아. 계속 지금처럼 써 나가면 돼.’ 오늘 쓴 글이 미래의 나와 어떻게 연결될지 모른다. 한 편이라도 쉽게 쓰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어떤 글을 쓰든 한 편 한 편 진심을 담아 쓴다면, 훗날 내게라도 그 마음이 가닿는다.

글은 타인과도 연결되지만 나와도 긴밀하게 이어진다. 내게 부끄럽지 않도록 계속 써 나간다면 글쓴이와 독자 사이에 새로운 연결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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