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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Apr 29. 2024

꼴등이어도 괜찮아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22.


네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이성과, 우주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성과, 네 이웃을 지배하고 있는 이성에게로 신속하게 달려가라.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22 중에서



윤우가 미술 대회에 나갔다.

선우도 나가고 싶어 했는데 윤우만 나가게 되었다.

학교마다 참가할 수 있는 인원수가 제한되어 신청자가 많으면 뽑기를 한다.

윤우는 몇 주 전부터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기에 수상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부모인 우리만 그랬지 당사자인 윤우는 우승을 노릴 만큼 야망이 컸었다.

1등 하고 올게, 우승하고 올게 자주 얘기하길래 1등 안 해도 된다, 즐겁게 최선을 다해서 그리고만 오라 했다.


진주성 안에 있는 국립 진주 박물관에서 전시품을 보고 그림을 그린다.

하교 후 선우까지 태워 온 가족이 함께 진주성으로 향했다.

비만 오지 않았으면 밖에서 놀며 기다렸을 텐데 그 점이 아쉬웠다.

남편과 선우, 은서는 주차하러 가고 나는 윤우와 대회 장소로 걸어갔다.

입구에서 보호자는 바로 통제 당하고 윤우만 확인을 거쳐 들어갔다.

4시에 만나기로 하고 돌아서는데 왜인지 마음이 이상했다.  

나도 아이도 이런 대회는 처음이라 그런가 보다.


진주성 근처 이마트에서 장 보고 돌아오니 윤우가 박물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에게 듣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이순신 장군의 장검을 그렸다고 한다.

남편은 꼼꼼하게 여백 없이 색칠했느냐고 물었다.

생각하더니 아닌 것 같다고 한다.

선우와 앞서서 걸어가는 윤우를 보며 남편에게 말했다.

"혼자서 긴장 안 됐을까."

"처음에는 조금 긴장되더라는데? 꼴등 할까 봐!"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형이랑 장난치며 걸어가는 아이가 뒤돌아서 자긴 꼴등만 안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 말에 남편과 나는 긍정적이라며 웃었는데 곧바로 정정해서 말한다.

"꼴등해도 돼~ 꼴등도 뒤에서 1등이니까 괜찮아!"

우승을 마음에 품는 것도 꼴등이어도 괜찮다는 마음도 모두 좋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좋아하는 마음을 괴롭힐 때가 있다.

그때마다 오늘 아이가 한 말을 떠올려야겠다.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나무라지도 말고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에 부끄러워하지도 말자고.

내 안에서 1등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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