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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Jun 12. 2024

영양 가득한 밥상과 같을 그 무언가를 찾아서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0권 4.

어떤 사람이 잘못하면, 선의로써 그를 깨우쳐 주고, 그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를 보여주라. 그렇게 할 수 없을 때에는, 네 자신을 탓하라.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네 자신을 탓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0권 4.



오늘 필사 문장을 적고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일기를 쓰면서 문장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하고, 반복해서 읽으며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남까지 갈 필요도 없이 내가 잘못했을 때, 선의로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떻게 깨닫지? 이렇게 글로 쓰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들은 엉키고 섞여서 손끝에만 갇혀 있었다.

답답함에 니체 책을 펼쳤다.

책을 신청한 것은 한 달 전인데 오늘 아침에서야 실물을 보고 펼쳐볼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결코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누구로부터 지탄받을 일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런 태도가 미래를 꿈꾸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라.'

이 문장 옆에 내 생각을 썼다.

내가 나의 북극성으로 여기는 본질과 순수함도 정신적 중심축으로 여기는 선함도 모두 나를 사랑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런 태도가 뜻을 이루는 길로 이끄는 것일까.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걸어간다. 그것에는 분명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단련시키는 고통이다.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이 문장에도 밑줄을 긋고 내 생각을 적었다.

남에게 이해받기를 기대하지 말자.

남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남 때문에 나를 질책하고 포기하는 마음은 나약하고도 나쁘다.

나에 대한 질 나쁜 사랑을 갈구하기보다 내가 나에게 질 좋은 사랑을 듬뿍 주자.


나에게 좋은 영화, 좋은 책은 '뭐라도 쓰고 싶게 만든다'라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철학 책을 읽다 보면 뭐라도 끄적거리고 싶다.

뒤죽박죽인 내 생각을 단정한 문장 옆에 펼쳐 놓고 싶다.

'니체의 독특한 정신 편린은 일종의 퍼즐 같아서 어떻게 조합하고 어떤 생각을 대입하느냐에 따라 나치즘의 기원이 될 수도 있고, 집단주의에서 개인을 해방시킨 실존주의의 첫 번째 페이지가 될 수도 있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읽어나가는 것은 그래서 너무나 위험하다.'라는 편역자의 글을 읽고 조금 긴장됐다.

글자 그대로 의미를 받아들이기보다 내 것으로 소화시키고 가공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한 달 전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니체 책을 신청했을까.

어떤 생각과 마음에서 이 책을 선택했을 텐데, 그게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내가 읽고 싶어 하는 책들은 지금 내게 필요로 하기에 본능적으로 느껴서 찾게 되는 것이라 믿는다.

거기에 답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서 니체에 이르기까지, 두 철학자의 문장에서 내가 무엇을 건져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내겐 영양 가득한 밥상과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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