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28.
내가 내 정신을 본 적은 없지만 존중하듯이, 나는 신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신들의 능력을 끊임없이 경험하기 때문에, 그 경험을 근거로 해서 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공경한다는 것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28 중에서
군더더기 없이 가볍고 싶다.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
남은 것은 나의 모든 것이 응축된 본질 하나.
이 알맹이가 묵직하게 나를 지탱하고 있으므로 한없이 가벼워져도 날아가지 않는다.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듯이 나의 존재도 그렇다.
눈에 보인다고 해서 모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실체는 있어도 알맹이가 없는 경우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소금쟁이가 가볍게 떠 있는 강은 제 존재보다 훨씬 깊고 넓다.
겉보기에 작고 약해 보여도 제 다리로 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며 제 생을 산다.
우리도 소금쟁이와 다르지 않지만 같을 수도 없다.
가볍지만 묵직하게, 유한하지만 무한하게, 미약하지만 초월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정신을 소유한 존재라는 점이다.
생명에는 끝이 있다.
몸과 마음은 이어져 있고 어느 하나가 기울면 둘 다 무너지기 쉽다.
이처럼 인간이 나약해 보여도 강인할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고 경험하기 때문이다.
초월적 존재인 신이 될 수 없어도 품을 수는 있다.
유한한 삶을 살아도 무한한 우주의 일부가 될 수는 있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