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족을 이어 주는 제사의 자리에서

《논어》, 공자_제4편 리인(里仁) 1.

by 안현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을의 풍속이 인하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인한 마을을 잘 골라서 거처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


-《논어》, 공자_제4편 리인(里仁) 1.



매년 설을 앞두고 시할아버지 제사가 있다.

이번에는 제사 때 잘 볼 수 없었던 친척, 조카들까지 모여서 북적였다.

두 달 전 시증조할머니·할아버지 제사 땐 남편이 없었는데 이번엔 제일 든든한 내 편이 있었다.

거기다 작은 형님에 미혼인 두 아가씨들까지 와서 명절 분위기가 났다.

아이들도 사촌 형, 누나, 언니, 오빠가 있으니 신났다.


제사, 명절 때 모이는 시댁은 화목하다.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며 자식들 취업과 결혼을 걱정하고, 연애 얘기, 아이들 자라는 모습 얘기에 하하 호호 웃는다.

어른들 사이가 좋으니 그 아래 사촌들 간의 사이도 좋아 스스럼없이 언니, 오빠 하며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나 빼고 다 E(외향형) 같다.


남편이 나와 맞춘 보라색 두루마기를 입고 삼촌들 뒤에 서서 제사 순서에 대해 말한다.

저런 건 언제 다 알아봤을까, 눈만 껌뻑이며 건너편에 서 있는 남편을 바라봤다.

어른들은 “종손이 잘 봐둬라.” 말씀하신다.

쟁반에 제수만 들고 나르는 나와 달라 보였다.

할아버지 생각이 나셨을까.

시할머니께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셨다.

아들, 며느리, 증손자들까지 꽉 차는 집이지만 그 안에서 가장 외로울 것 같았다.


제사를 지내고 밥을 먹고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나도 섞여 들어 있었다.

미혼 아가씨들의 연애 이야기에 아이가 셋인 형님과 나는 귀 기울였다.

제사가 더 간소해지면 좋겠지만 제사 아니면 가족이 다 모이는 게 어려운 것도 맞다.

해가 바뀌고 보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점점 어색함이 익숙함으로, 어려움이 친근함으로 바뀌어 가기도 한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인(仁)한 마을 모습이 어제 제사와 명절로 모인 가족들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여전히 시댁 어른들이 어렵고 조심스럽지만 내가 이 화목한 공동체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소한 하루가 빛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