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공자_제4편 리인(里仁) 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비로서 도에 뜻을 두고도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한다면 더불어 논의할 상대가 못 된다.”
-《논어》, 공자_제4편 리인(里仁) 9.
백희나 작가님 그림책을 좋아한다.
《알사탕》의 동동이는 어린 선우 같고, 《이상한 손님》의 천달록은 어린 윤우 같았다.
이제는 다섯 살 딸에게 읽어주며 첫째, 둘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백희나 작가님의 앞선 모든 책들이 아들과 먼저 추억이 맺어져 있다면 최근 신작인 《해피버쓰데이》는 딸과 연결되어 있는 책이다.
얼룩말 제브리나는 요즘 기운이 없고 자꾸만 마음이 무거워져 집에만 있는다.
막내 이모는 혹시 얼루룩덜루룩탈탈에 걸린 것 아니냐며 곧 생일인 제브리나에게 선물을 보낸다.
생일 선물은 커다란 옷장이었다.
매일 한 벌의 멋진 옷이 세트로 들어 있다.
물에 담그면 사라지는 하루밖에 입을 수 없는 옷이다.
옷, 신발, 가방 용어가 어려운데 재밌다.
내가 뭘 읽고 있는 거지 싶은데 이상하게 기분 좋아진다.
검정 물방울무늬 블라우스, 다홍 스트랩 펌프스, 레몬 크림색 티 드레스, 폼폼 베레모, 면 100% 페이즐리 스카프, 깅엄 체크 플란넬 셔츠, 코튼 레이스 페티코트, 청록색 퍼프소매 원피스… 와 같은 식이다.
자꾸 듣다 보니 은서도 어려운 용어를 외워서 말한다.
갓 다섯 살 된 꼬마에게서 '진주 손잡이가 달린 토트백'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입꼬리가 안 올라갈 수가 없다.
제브리나는 옷과 어울리는 하루를 보내게 되고, 사람을 만나고, 몸을 움직이면서 점점 기운 낸다.
하지만 이 옷장은 무한하지 않다.
생일날, 특별한 드레스를 기대하며 열었지만 고깔모자 하나뿐이다.
실망한 채 잠들었다가 고깔모자를 쓰고 유니콘이 되어 하늘을 나는 최고의 생일을 경험한다.
텅 빈 옷장은 오랫동안 입어온 옷들로 채우고 마음도 괜찮아진다.
그 후로 제브리나가 방 안에 틀어박히는 일은 없다.
가끔 마음이 무거워질 때면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왜 이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질까.
스스로를 돌보고 어둠 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제브리나를 통해 독자도 위로받는다.
그 옷에 어울리는 하루를 보내게 된 제브리나처럼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기분과 행동도 달라진다.
공자님은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한다면 외형적인 재화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고 했지만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고 꾸미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저마다 다 다를 테지만 어두운 터널 밖으로 나오게 해 줄 일상의 작은 즐거움 하나쯤은 사치를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