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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속에서 자란 글쓰기

《논어》, 공자_제4편 리인(里仁) 12.

by 안현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익에 따라서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아진다."


-《논어》, 공자_제4편 리인(里仁) 12.



어릴 적 엄마는 한약방에서 한약 달이는 일을 하셨다.

아가씨 때 하던 일이었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다가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한약방은 시내 번화가에 있었다.

방학 때면 두 살 아래 남동생과 엄마가 일하는 곳에 자주 따라나섰다.

끝나면 시내에서 햄버거, 돈가스, 떡볶이 같은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쇼핑도 했다.

하지만 엄마가 일 마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어린 우리에겐 너무 길고 지루했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대형 문구점에서 구경하기도 하고, 서점에서 이 책 저책 둘러보다 다시 돌아왔다.

약 나오는 시간이면 박스를 접거나 기계에서 나오는 한약을 상자에 담는 등 작게 일손을 보태기도 했다.


한약방에는 손바닥만 한 얇은 수첩이 많았다.

기계 회사인지 박스, 포장지 회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제품과 함께 오는 회사 광고가 찍힌 메모장이었다.

동생과 나는 그 수첩에 빙고도 하고 온갖 걸 다 썼다.

심심하다는 감정부터 눈에 보이는 사물의 단어, 떠오르는 가수의 이름, 있었던 일, 하고 싶은 일, 사고 싶은 물건….

지루하고 느리게 흐르던 그 시간들은 내 생각이 자라고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많은 계기 중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나와 비슷한 유년 시절을 보낸 동생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순수한 즐거움 보다 무언가 얻고자 했던 마음이 앞섰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올 수 있었을까?


여전히 손으로 글을 쓰는 게 좋고,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도 좋다.

글 쓸 때마다 이러한 즐거움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살핀다.

오랜 친구 같은 읽기와 쓰기를 당장의 이익, 목적을 위해 잃고 싶지 않다.

글쓰기가 어린 시절 지루한 시간을 견디게 해 준 친구였다면,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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