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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순위가 바꾼 일상

《논어》, 공자_제4편 리인(里仁) 23.

by 안현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절제 있는 생활을 하면서 잘못되는 경우는 드물다.”


-《논어》, 공자_제4편 리인(里仁) 23.



영화, 드라마 보기를 좋아하는 내게 OTT 플랫폼은 보물 창고였다.

보고 싶었는데 못 봤던 드라마부터 최신작까지 볼거리가 넘쳐났다.

'드라마 보는데 시간을 보내다니. 드라마 볼 시간에 책을 보자. 책 볼 시간도 없는데!'

좋아하는 것을 부정하며 억지로 참아내기도 했었다.

영화와 드라마가 내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좋아하는지,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유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고찰한 끝에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나는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를 나의 또 다른 인풋으로 삼고 긍정적으로 소화해 내겠다!'

이렇게 마음먹은 순간, 하루 동안 할 일을 다 한 뒤면 자유롭게 시청하며 지냈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몇 년이 걸렸다.

언제까지 이 심적 여유로움이 계속될지는 몰랐지만 행복한 시절이었다.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시간을 떼어 내어 정주행 하던 지난날이 벌써 오래된 일 같다.


예전이었다면 벌써 봤을 작품들이 쌓여갔다.

2025년 기대작과 화제작들은 또 얼마나 화려한가.

하지만 모두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이 드라마는 총 7부작, 한 화에 한 시간쯤 되니까 다 보려면 7시간이 들어가는데… 그 7시간을 차라리 책 읽고 교재 연구하는데 쓰는 게 낫겠어.'

어느새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새로운 변화였다.

여전히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이 확실히 바뀌었다.

남편이 먼저 영화 한 편 볼까, 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자기 전에는 더욱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며칠 날 어디로 출장 가는데 같이 갈래 묻는 말에도 흔쾌히 좋다는 답변 대신 그날 수업이 있어, 수업 준비해야 해서 하는 말로 바뀌었다.


마음 편하게 넷플릭스를 시청하던 때가 그립고 좋았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도 지나서는 '그때도 행복했었어.' 느낄 것이다.

내가 이 시간을 곧 그리워할 때가 올 거란 것을 알았고, 그 시간을 보내는 순간만큼은 행복했으니까.


절제는 억지로 참아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정도에 넘지 아니하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함]이라는 뜻풀이처럼, 균형을 맞춰 나가는 것이었다.

넷플릭스, 티빙, 쿠팡 플레이 3개를 동시에 구독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넷플릭스 하나만 남아 있다.

덜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 게 아니라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안 보게 됐다.

절제는 결국, 내게 더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는 힘이자 내가 원하는 것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한 과정이다.

지금 이 순간의 선택들이 모여 나를 만들어간다.

그러니 오늘도 내가 정말 원하는 것에 시간을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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