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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담는 그릇

《논어》, 공자_제5편 공야장(公冶長) 3.

by 안현진

자공이 여쭈었다. "저는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그릇이다."

"무슨 그릇입니까?"

"제사에서 곡식을 담는 옥그릇이다."


-《논어》, 공자_제5편 공야장(公冶長) 3.



며칠 전,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 왔다.

서점은 생각부터 기분 좋아지는 곳이다.

이번엔 많은 책을 구매할 마음을 먹고 있었기에 더욱 신나서 갔었다.

사려던 목록 외에도 어린이·청소년 문학 코너를 한참 서성였다.

이거 재밌겠다, 교재로 써도 좋을 것 같은데, 이 출판사는 주로 고학년 역사 동화책을 다루는구나… 지난번에 왔을 때와 다르게 눈에 보이는 책이 또 달라졌다.

한 권씩 한 권씩 담다 보니 어느새 바구니가 가득 채워졌다.

속으로 '오늘은 그만! 여기까지!'를 외치고 아이들과 남편 책 고르는 걸 도와주었다.


읽기만 하고 교재 연구가 덜 끝난 책들이 책상에 쌓여 있다.

눈앞의 책꽂이에는 '나 재밌거든~ 어서 읽어줘~' 손짓하는 책들로 가득하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건 똑같은데 하는 일은 조금 달라졌다.

하는 일은 달라져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요즘 내가 읽는 책 주인공들은 어린이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어른을 보고, 또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시대를 본다.

다양한 고민을 안고 성장해 가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어릴 적 내 생각도 나고, 나는 어떤 어른이 되었나 생각하게 된다.

어린이였던 나에게 지금의 나는 어떤 어른일까?

예전에는 책을 읽을 때, 미래 내 모습을 그려보면서 현재를 보았다.

어린이·청소년 책을 읽는 지금은 과거의 내 모습을 돌아보면서 현재를 본다.

두 책 모두 현재의 나를 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늘 문장을 필사하면서 나는 어떤 그릇일까, 어떤 쓰임이 있을까 생각했다.

몇 년 전, 나는 약자를 위한 일이 잘 맞기 때문에 노인 아니면 어린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하면 좋은데 교육 쪽이 잘 맞다는 얘길 들었었다.

그때만 해도 나와 가르치는 일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조합이었다.

한 번이 아니었다.

주위에서 내 사주를 넣어 해주는 얘기를 듣다 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라 신기했다.

지금은 아이들을 위한 책을 읽고 가르치고 있지만 언젠가는 아이들을 위한 글도 쓰고 싶다.

사주팔자라는 게 정말 있다면 내 인생은 아이들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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