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리워질 순간

《논어》, 공자_제9편 자한(子罕) 30.

by 안현진

'산앵도나무 꽃이, 펄럭펄럭 나부끼네. 어찌 그대 그립지 않으리요마는, 그대 머무는 곳 너무 머네.'

공자께서 이 시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지, 진정 그리워한다면 어찌 거리가 멀 까닭이 있겠는가?"


-《논어》, 공자_제9편 자한(子罕) 30.



연년생 아들 엄마가 될 줄 몰랐다.

막연히 딸 하나, 아들 하나 생각했다.

첫째는 아들이어도 차분한 면이 있었는데 둘째는 그야말로 상남자였다.

남편이 찍어 놓은 영상 속에 안방 침대에서 뻗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날뛰는 네 살 윤우가 있다.

아들만 키워서 딸 있는 집은 어떤지 몰랐다.

은서를 키워보니 아들과 딸은 너무 다르다.


형제를 키울 때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두 번 있었다.

먼저 연년생으로 둘째가 태어나는 동시에 첫째 아토피가 폭발했던 시기다.

태열이길 바랐던 둘째도 아토피였다.

신생아 육아, 두 살 아들 육아, 아토피 집중 관리로 살이 쭉쭉 빠졌었다.

두 번째는 선우, 윤우가 네 다섯 살 되던 때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두 아이와 종일 부대끼며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소모가 컸었다.

매일 내 바닥과 마주하던 때였다.

육아는 마라톤이다.

임신, 출산이 출발선에 서 있는 거라면 신생아기는 이제 막 발을 뗀 순간이다.

두 살, 세 살, 네 살… 너무 귀엽지만 아직 인내하며 가르칠 게 많은 나이다.

속에서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내 감정과 아이의 사랑스러움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시기기도 하다.

그때를 어떻게 지나왔을까.


육아 멘토로 삼는 사람의 강연은 먼 곳이어도 들으러 갔다.

4-5시간 걸려도 새벽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반나절을 차 안에서 다 보내어도 한 시간, 두 시간 강연을 듣기 위해 갔다.

강연에서 받아온 에너지로 다시 아이들과 내 일상을 살아갔다.

책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읽었다.

광적으로 나와 아이에게 몰입하던 그때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 가장 격변의 시기였다.

책과 육아 멘토가 없었다면 나는 흔들리는 뿌리조차 내리지 못한 채 이리저리 휘날려 다녔을 것이다.


요가 갔다 오니 축구 교실 갔다 온 두 아들이 반겨준다.

샤워도 하고 영어 듣기도 했다며 웃으며 달려 나온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 거실 책상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제 할 일과 게임까지 모두 다 한 첫째는 할 게 없다며 빨래를 갠다.

둘째는 옆에서 끙끙대며 수학 문제집을 붙들고 있다.

셋째는 유치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육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었다.

아이 키우는 즐거움, 행복, 보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세 아이가 커 가고 있는 지금, 언제나 그리울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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