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

《논어》, 공자_제10편 향당(鄕黨) 3.

by 안현진

임금이 불러 나라의 손님을 접대하게 하면, 얼굴빛을 바로잡으시고 공경스럽게 발걸음을 옮기셨다. 함께 서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실 때는, 마주 잡은 두 손을 좌우로 돌리며 좌우의 사람들에게 읍을 하셨는데, 읍을 하실 때마다 옷이 앞뒤로 가지런히 움직이셨다.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실 때에는, 손의 움직임이 새가 날개를 편 듯 단정하셨다. 손님이 물러간 후에는 반드시, "손님께서 뒤돌아보지 않으시고 완전히 떠나셨습니다"라고 보고하셨다.


-《논어》, 공자_제10편 향당(鄕黨) 3.



“엄마, 잘하고 왔어?”

“으응.”

“근데 왜 표정이 안 좋아?”

“…… 물구나무서기가 안돼…..”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아들들이 차례로 반긴다.

요가를 시작한 이후, 가장 이상한 마음이 드는 날이었다.

"옆에서 현진 씨가 끙끙대는 거 보고 아, 오늘 진짜 힘들긴 했구나 느꼈잖아."

비가 와서인지, 내일부터 요가원 휴가라 그런지, 내 몸이 문제인지 오늘 유독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끙 하거나 호흡 소리가 조금 크게 났다.

앞 시간에 하고 간 사람들 표정에서 예감했었다.

각오는 했지만 문제는 이상한 감정이다.

힘든 건 다른 날도 마찬가지인데 오늘 이 감정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마지막 자세는 물구나무서기였다.

다리를 접은 상태에서는 유지가 좀 되었는데 들어 올리는 순간 뒤로 꽈당했다.

조용한 요가원에 큰 소리가 났다.

아무리 넘어지면서 배우는 거라지만 오늘은 창피했다.

집에서 연습도 열심히 안 하면서 안 된다고 침울해하는 스스로도 별로였다.

그 마음 때문인지 울컥 눈물이 나려고까지 했다.


땀으로 젖은 옷을 벗고 씻었다.

남편이 아침에 끓인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으려는데 국이 바뀌었다.

고기 많은 건 남편 거, 두부 많은 건 내 거였다.

먼저 앉은 남편이 당연히 아무것도 모른 채 먹고 있는 걸 보고 짜증이 났다.

"그거 내 국인데!"

별거 아닌 일에 짜증이 나고 집안 분위기도 싸하게 만들었다.

배고파서 그렇다고 간헐적 단식을 그만하라고 한다.

한 달 넘게 잘 유지해 오고 있지만 요즘 좀 힘들어지던 참이었다.

배고픔 때문이었는지, 물구나무서기 때문인지,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 채 방으로 들어왔다.

요가 일지를 적고, 요가 에세이를 읽으며 내 마음에 대한 이유를 찾아 나섰다.

나보다 앞서 요가에 몸 담고 있는 요가인이 쓴 글에 마치 해답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르사아사나(머리서기)에 대한 글을 찾았다.

시르사아사나에 대한 감정 변화 단계 중 내가 이 구간이구나 싶자 한결 나아졌다.


책의 도움을 받으면서 책에 대한 생각으로 뻗어 나갔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했다.

어제 필사를 하고, 손님과 관련된 틀에 박힌 생각만 하다가 결국 내 언어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오늘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요가와 관련된 이상한 감정과 내려앉은 집안 분위기를 마주하며 글을 썼다.

손님은 누군가 우리 집에 찾아오는 낯선 타인이라는 기존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손님을 좀 더 확장시켜서 생각하니 우리에게 찾아온 아이들도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남편도 내 몸을 빌려 사는 나도 모두 귀한 손님이었다.

부정적인 마음은 언제든 피어오를 수 있다.

내 기분을 가라앉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꿔줄 마음의 언어가 고갈되었다는 점이었다.

물구나무서기도 마찬가지다.

'왜 안 되지?' 보다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로 바꿔 생각해야 했다.


이상한 기분이라고 쓰면 이상한 기분인 상태에 머문다.

좀 더 명확하고 풍부한 언어를 사용하면 내 감정도 그만큼 더 분명하고 다양해진다.

내 세계가 넓어질 수 있도록 읽고 쓰는 것을 멈추지 말자, 게을리하지 말자는 것으로 이 감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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