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두려워한 한 아이의 몸부림

by 아니아즈




"만화 영화를 보고 모두 어떤 생각이 들었니?"




수업 시간에 한 만화 영화를 보고, 선생님이 반 학생들에게 물었다.

차례대로 각자의 감상에 대해 늘어놓았다.


누구는 재밌었다. 누구는 재미없어서 잤다.


자리에 앉아서 모두의 답변을 듣던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누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건가.

나는 만화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한 감정이 나를 음습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기에, 이 감정을 모두가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안에서 뒤엉켜 속을 뒤집어엎고 있는 이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발표 순서는 차례에 맞춰 돌았다.


내 짝의 차례가 왔고, 그다음은 나의 차례였다.

내 짝이 자리에서 훌쩍이며 일어났다. 내 짝은 눈가가 촉촉해진 상태로 물음에 답했다.


"주인공이 불쌍해요."


그 말을 뱉고, 짝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엉엉 울었다.

선생님은 그런 내 짝을 위로해 주었다.


내 짝의 울음이 서서히 끝자락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선생님은 다정한 목소리로 같은 질문을 물었다.


"너는 어떤 생각이 들었니."


나는 영화를 보고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자라나던 감정을 토해냈다.

입술을 꼼지락거리다가 내 입안을 텁텁하게 만드는 말을 꺼냈다.






"전 죽는 게 두려워요."





그 말과 감정을 드러낸 순간, 반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굳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쏟아졌다. 그것이 곱지 못한 시선이라는 사실만큼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얼굴에서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9살 때였다.





그날 보았던 만화 영화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물며 제목마저도. 내가 기억하는 부분은 하나다.


주인공이 자신의 친구를 구하고 목숨을 잃었다.

주인공이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천천히 눈을 감으며, 세상이 완전한 어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장면이 전환되었다.


주인공이 다시는 뜨지 않을 눈을 감고 미동조차 하지 않는 모습.

그런 주인공을 두고, 모두가 슬퍼하는 모습.


그것만이 내가 기억하는 만화 영화의 내용이다. 그 외의 내용은 백지 같다.

펼쳐진 필름에서 딱 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떼어낸 듯하다.

그 장면을 본 순간, 한 화살이 날아와 내게 꽂혔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나도 죽어가는 건가.

죽음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 머리를 가득 메우는 의문들은, 나를 옭아맸다.


그날부터 나는 올빼미가 되었다. 밤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밤을 지새웠다.

주인공의 마지막이었던 어둠이 두려웠고, 매번 불을 켠 채로 잠에 들었다.

그럼에도 두려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두려움에서부터 피어난 죽음에 대한 의문은, 죽음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바뀌었다.

죽음을 이해하려는 나의 노력은 멈추지 않고, 작은 실험으로 이어졌다.


당시에 아이들 사이에서는 한 낭설이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는 낭설이었다.


정말 빨간색으로 이름을 적으면 죽는 걸까.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빨간펜을 꽉 쥐었다.

떨리는 손을 타이르며 빨간펜으로 삐뚤빼뚤 내 이름을 공책에 적었다.


한 번. 두 번. 내 이름을 썼지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세 번. 그때서야, 어떠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내 귀를 찌르는 비명이 들려왔다.

그 날카로운 비명에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들었다.

비명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내 짝이 경멸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얘 지금 빨간색으로 자기 이름을 계속 쓰고 있어!"


내 옆에 앉아 있던 짝이 기겁하며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이 황급히 달려와 나의 손목을 낚아챘다. 나는 그대로 교실에서 끌려 나와 교무실로 향했다.

선생님에게 꽉 쥐어져 저려오는 손목의 아픔을 느끼며, 끊임없이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걸까.

잘못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지레짐작했다.



"왜 붉은색으로 계속 이름을 쓰는 그런 짓을 한 거니?" 선생님이 내게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죽음이 알고 싶어서요."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손가락을 꼼찌락거리며 웅얼거렸다.


내 대답에 선생님은 눈을 가늘게 뜨며,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한숨을 푹 쉬더니, "다음부턴 그런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라며 혼났다.

그 말을 듣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선생님의 그 차가운 한 마디는, 내게 가시가 되었다.

내 마음은, 선생님 앞에서 푹 숙이고 있는 나의 고개처럼 무거워졌다.


죽음을 알려는 나의 행동은, 매번 최악으로 이어졌다.

결국,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알 수 없었다.

당시의 내가 알 수 있던 사실은, 죽음은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그 두려움을 언제 극복했는가.

모르겠다.

그냥 언제부턴가, 그냥 잊어버렸다.
자연스럽게.




언제부터 그런 두려움을 잊어버렸는가. 떠올려 보기 위해 미간을 잔뜩 찡그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십 년 전 본 만화 영화에 대한 기억처럼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당시의 내가 죽음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미지와 무지 탓인 듯하다.

죽음은 알 수 없기에 두려웠다. 미지는 곧 공포였다.

내가 사라진 세계와 죽음 이후의 세계.

그것을 모르기에, 나는 공포라는 늪에 빠졌다.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의 내게 묻는다. 너는 죽음을 아냐고.

죽음. 난 그것에 대해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러기에 포기했다. 그리고 받아들였다.


죽음을 모른다는 사실을.

내가 그것을 두려워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과거 내가 했던 이해의 노력들은 쓸데없는 일이 아니었다.

그 과정을 거쳤기에, 나는 알 수 있었다.

변하지 않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갉아먹을 뿐이라는 걸.

시작이 있다면, 결말이 있는 법이다.

내 노력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아마 평생 내 안에 머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런 두려움 속에서도 살아간다.


죽음은 무지의 그림자다. 그리고 나는 그 그림자를 지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죽어가고 있는 게 아닌, 살아가고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게 따스한 한 마디를 건네주고 싶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당연하다고.
그것은 네가 삶을 사랑한다는 의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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