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소설
앞만 보고 달려가던 어린 아이는 숨이 찼다.
아이는 숨을 돌리기 위해 열차의 정거장 의자에서 쉬기로 했다.
어린 아이가 앉으려 한 의자에는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린 아이가 인사했다.
"안녕?" 열차의 정거장 의자에서 턱을 괴고 앉아 있는 남자가 대답했다.
“아저씨, 여기서 뭘 하고 있어요?”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러게. 나는 지금 무얼 하는 걸까.”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건 자신인데, 자신에 대해 모르면 아저씨는 아는 게 있긴 한가요?”
남자는 턱을 괸 채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단다. 그리고 적당히 많은 건 좋지만, 너무 많은 건 오히려 독이 되지. 그 탓에 지금 난 생각이란 늪에 빠진 거란다."
”많은 게 왜 독이 된다는 거죠? “
"100개의 별에서 내가 찾던 별 하나를 찾는 것보다, 10개의 별 사이에서 하나를 찾는 게 더 쉽지 않겠니? 그런데 내 기억 속에는 100개 보다도 많은 별이 있고, 그 사이에서 내가 찾던 단 하나의 별을 아직 찾지 못했단 얘기란다. 어쩌면 나는 지금 내가 무얼 하는지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내가 찾던 정답뿐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길을 헤매고 있는 거야. 이런 경우는 시간이 지나고 생각이 많아질수록 그 답을 오히려 알기 어려워져. 기억이란 건 심술꾸러기라 때때로 거짓말을 해서 쉽게 믿어서는 안 되거든. 그러니 네가 나를 도와주겠니?"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음. 방금 했던 질문 말고 다른 질문을 내게 해주겠니?"
“그 정도야 쉽죠. 아저씨는 왜 열차에 타지 않나요?”
“그건 알고 있단다. 이 열차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열차는 사람이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주는 게 아닌가요? 아. 이 질문의 답은 알고 계시죠?”
어린 아이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 또한 알고 있단다. 열차는 타는 사람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않는단다. 열차는 정해진 곳으로만 가고, 정해진 곳에서만 멈추거든. 열차를 타며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착각하고 있는 거란다. 열차가 가는 곳을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이라고 착각하는 거야.”
우렁찬 기차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아이와 사색하는 남자의 앞으로 다음 열차가 굉음과 함께 지나갔다.
남자는 지나가는 열차의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열차가 완전히 사라질 즘에 남자가 다시 말했다.
“나도 한때 그랬고. 네 덕분에 하나의 문제를 해결했구나. 내가 찾던 별은, '나는 지금 열차가 가는 곳이 아닌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란다.”
“그럼 아저씨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딘데요?”
“방금 지나간 열차가 지나온 곳이란다.”
“뭐야. 결국 열차 길 중 하나잖아.” 어린 아이는 헛웃음을 쳤다.
사색하는 남자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하지만 저 ‘시간’이라는 열차는 한번 지나온 곳은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단다. 깨진 사탕을 다시 이어 붙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아저씨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어딘데요?”
“그러게. 어디일까?”
“왜 또 제가 물었는데, 제게 다시 물어보시나요?”
“내가 아직도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앉아 있었던 이유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나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구나.”
“자기 맘을 자기가 모르면 누가 알아.” 어린 아이는 구시렁거렸다.
“그래.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르겠구나. 방금 네 질문에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을 정할 수 있었단다. 네 덕분에 긴 세월 동안의 사색이 끝났구나. 나는 다음 열차가 오면 내가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갈 생각이란다.”
“방금은 돌아갈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세상에 이룰 수 없는 꿈은 없단다. 어딘가에선 그 꿈을 이룰 수 있단다.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 자신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을 뿐이란다. 마치 내가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정답인지 몰랐던 것처럼 말이야. 누군가 밤하늘의 별을 따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면 당연히 지구에서는 이룰 수 없을 거란다. 이곳은 밤하늘이 아니기 때문에 말이지. 그 사람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장소는 지구가 아니라 밤하늘인 거란다."
사색을 마친 남자의 앞뒤가 안 맞는 말에 어린 아이는 짜증이 났다.
“그래서 돌아가고 싶은 곳이 어딘데요?”
“혹시 사탕 좋아하니?”
내가 어린애처럼 보이나, 어린 아이는 짜증이 난 상태에서 기분마저 상했다.
“나는 내가 사탕을 좋아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구나. 사탕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시절로.”
그때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널을 지나 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구나. 마치 이 모든 게 긴긴 꿈만 같구나.”
“꿈 아닌데.” 어린 척 왕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색을 마친 남자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정장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어린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어린 아이는 눈썹을 찡그리며 받기 싫어했다.
사색을 마친 남자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어린 아이의 손에 물건을 쥐여 줬다.
어린 아이는 남자가 쥐어준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어린 아이의 작지도 크지도 않은 애매한 손에도 쏙 들어오는 작은 물체였다.
그 물체는 소중한 듯이 손수건으로 꽁꽁 싸여있었다.
사색을 마친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난 이 긴긴 꿈에서 이제 깨어날 시간이란다.”
사색을 마친 남자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요란하게 소리치며 요란하게 들어오는 열차를 향해 달려갔다.
"나 돌아갈래!"
어린 아이는 남자의 말을 듣지 못했다.
어린 아이의 모든 관심은 손 안의 작은 물체에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소중하게 여긴 걸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아이는 한참이 지나서야 남자가 있던 자리를 보았다.
사색을 마친 남자는 열차와 함께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간 후였다.
어린 아이는 꽁꽁 싸맨 손수건을 풀었다. 손수건 안에는 병이 있었다.
그 병 안에는 부서진 딸기맛 사탕들이 별의 조각처럼 담겨 있었다.
어린 아이는 남자 때문에 상한 마음을 치료하고 싶었다. 그리고 때마침 자신의 손에 사탕이 생겼다.
어린 아이는 고민 없이 뚜껑을 열었다. 그는 부서진 딸기맛 사탕을 입으로 털어 넣었다.
사탕은 입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녹아 사라졌다.
남자가 건네준 딸기맛 사탕의 맛은, 평범한 딸기맛 사탕의 맛이었다.
어린 아이는 평범한 사탕의 평범한 맛에 투덜거렸다.
"이런 건 하나도 특별하지 않아."
그는 평범한 사탕조차 남지 않은 병과 손수건을 땅바닥에 버렸다.
어린 아이는 자신이 기차역에 왔던 이유가 문득 생각났다.
충분히 쉬었으니 다시 길을 나서기로 했다. 어린 아이는 다시 앞만 보며 길을 나섰다.
어린 아이마저 사라진 기차역에는 무엇 하나 남지 않았다.
열차도, 남자도, 사탕도. 더는 없었다.
모든 것이 지나갔다.
어린 아이의 입 안에 남아있던 사탕의 맛이 어느새 사라졌다.
어린 아이는 사탕의 맛과 함께 사색하던 남자도 잊어버렸다.
그리고 앞만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