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날아가고,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기다린다.

by 아니아즈




사람들만 횡단보도로 건넌다.




사람들이 길을 건너고자 한다면, 일단 횡단보도를 찾는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간단하다. 그렇게 정해졌기 때문이다.

횡단보도를 찾으면,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간단하다. 그렇게 정해졌기 때문이다.

정해진 길 위로, 정해진 규칙대로, 정해진 세상을 건넌다.

이는 사람들 사이에선 당연시되는 규칙들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당연시되는 규칙들을, 동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길이란,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발이 닿는 곳이 곧 길이다.


길을 건너기 위해 사람은 신호를 기다린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그런 사람들 위로 새는 날아간다. 그들의 길은 하늘 위에 있기에.

사람들은 멈춰 서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자신 위로 지나가는 새들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그 새를 바라보며, 멈춰 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우리는 삶이라는 길을 나아가다가 멈춰 선다.





빨간불의 신호등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우리는 멈춰 선다.

과거의 아픔, 그 아픔으로부터 이어진 현재의 아픔, 그리고 그 아픔으로부터 이어질 미래의 아픔.

폐가 구멍이 뚫려 바람이 새는 것 같은 아픔을 삶에서 느끼고, 그 아픔 탓에 우리는 멈춰 선다.

그리고 이런 아픔을 느끼는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말한다. 주저앉은 자신을 탓한다.

신호등의 빨간불이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주저앉고 만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보며, 땅 위에 주저앉아 있는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욕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속으로 외친다. 또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우리는 이미 무언가를 하고 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막아선 신호등은, 우리에게 기다림의 시간을 준다.

기다림의 시간은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

생각할 시간은, 이해할 시간을 준다.

이해할 시간은, 우리에게 세상을 받아들일 기회를 준다. 그리고, 아픔을 받아들일 기회를 준다.

비정상을 받아들일 기회를 준다. 우리는 모두 비정상이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이전에는 비정상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우리가 보는 것들이 정상이 되는 것이다.






모든 건, 마음에 달려있다. 이 마음을 위해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인생의 길에서 신호등이라는 장애물에 가로막혔다고 주저앉을 필요는 없다.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우리는 횡단보도 앞에서 조용한 싸움을 한다. 이 싸움의 필승전략은 간단하다.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렵다. 기다림이란 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의심을 낳는다. 자신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심. 본인의 행동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심.

자신이 원하는 바가 다가오는 것은 맞는지에 대한 의심.

그런 의심. 의심. 의심.

의심 속에 빠져들어 갈 즘에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선 새들이 훨훨 날아가고 있다. 새들의 길로.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우리는 다급해진다.

다급해지고 초조해진 마음은, 기다림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다.


당장 내 눈앞에서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애태울 필요도, 재촉할 필요 또한 없다.

신호가 바뀌지 않은 신호등한테 무차별적인 폭언과 폭력을 퍼부을 필요도 없다.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신호등은 바뀔 것이고, 그 시간은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단지, 내 의심과 걱정이 그 시간의 흐름의 발목을 잡고 느릿하게 만들 뿐이다.

내 위로 새가 지나간다고 조급할 필요 없다.

내일이 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이미 무언가를 하고 있다.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단지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내일이 오는 시간이.

단지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다. 아름다운 세상이.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그 싸움의 끝에는 결국 신호는 바뀌기 마련이다.





우리는 길에서 멈춰 선다. 우리는 삶에서 멈춰 선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멈춰 선다. 멈춰 서기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나아간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나아간다.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 당연한 얘기이다. 그들은 하늘이라는 자신들의 길로 다닌다.

사람들만 횡단보도를 건넌다. 이 또한 당연한 얘기이다.

우리는 새가 아니다. 우리는 사람이다.


새에게는 새의 시간과 길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시간과 길이 있다.

새들은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날아가고, 사람들은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새는 새의 길을, 사람은 사람의 길을 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갈고 닦아온, 우리의 피와 땀 세월이 담긴 길로 다닌다.

이 길을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기다림이다. 그리고 믿음이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선 신호등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내일은 올 것이고, 아름다운 세상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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