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가 된 나무의 비명

by 아니아즈


피아노가 된 나무의 건반에 사람의 손가락이 닿는다.

뾰족한 손가락이 피아노의 건반을 깊숙이 후벼 판다.

손가락이 자국을 새길 때마다, 피아노가 뿜어낸 목소리가 선율을 타고 온 세상에 퍼진다.

피아노가 자아낸 목소리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며, 눈물을 불러일으킨다.


피아노의 무엇이, 우리의 심장을 흔들고 영혼을 홀릴까.


우리가 들으며 눈물 흘리는 소리의 정체는,

온 세상을 빈틈없이 메꿔가는 소리의 정체는,

피아노의 아릿 다운 노랫소리일까.

아니면, 피아노가 된 나무의 처절한 비명 소리일까.





피아노의 흐느끼는 소리는,
자신이 나무였던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한 마지막 호소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한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는 푸르른 숲에서 빗물과 햇살, 그리고 바람의 손길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빗물과 햇살. 그리고 바람의 손길에서 자라난 나무는,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모습을 본받아 푸르른 모습으로 자라난다.

하늘에 닿고자 하늘을 향해 솟아난다.

하늘의 색을 본받아 푸르른 나뭇잎을 피어낸다.

하늘을 어루만지고자 가지를 뻗는다.

숲 속에서 하늘을 향해 뻗어가던 나무는 하늘과 함께 한 그루의 어엿한 나무로 성장한다.


야리야리했던 나무가 어엿한 나무가 되었을 즘에, 사람들이 찾아온다.

사람은 나무의 기둥을 퉁퉁 두드린다. 나무가 충분히 익은 것을 확인하자, 품에서 도끼를 꺼내든다.

어엿한 나무가 된 나무의 기둥이자 허리를 향해, 도끼의 날이 날카롭게 파고든다.

한 번에 끊어지지 않는다면, 두 번. 두 번으로 부족하다면 세 번.

도끼가 휘둘러질 때마다, 나무에 상처가 낙인처럼 각인된다. 한번, 두 번, 세 번.

도끼날로 생긴 상처가 나무의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며, 나무의 기둥을 잠식한다.

하늘로 향해 솟아나는 기둥은 상처에 완전히 집어삼켜지고, 결국 끊어진다.

나무는 어떠한 저항도,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허리가 끊어지며 땅바닥에 그대로 넘어진다.


사람들이 땅바닥으로 엎어진 나무에 모여든다.

그리고, 하늘을 갈망하던 나무의 소망을 잘라내기 시작한다.

필요 없는 부분이라며 나무의 푸르른 잎사귀를 쥐어뜯는다.

다음으론, 모난 부분이라며 나무의 가지들을 부러뜨리고 잘라낸다.

목소리가 없는 나무는 단마디 비명조차 외칠 수 없이,

그들의 손아귀에 휘둘려 나무의 모습을 망각한 나무로 탄생된다.


본인을 망각한 존재를, 사람들이 원하는 형태로 다듬고, 어루만지고, 조각한다.

사람들은 틀에 맞게 나무를 잘게 잘게 잘라낸다.

어렴풋한 흔적으로 남아있던 나무의 마지막 미련을 분해한다.

그렇게 나무에서 나무의 흔적은 한 줌 재도 남지 않는다.


분해된 나무를,

규격에 맞춰, 규칙에 맞춰, 규정에 맞춰, 조립한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나무는 피아노가 된다.





피아노가 된 나무는 본인에게 없던 목소리를 얻었다.
그것이 본인이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피아노가 된 나무는 그 대가로 모든 것을 잃었다.
그것이 본인이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숨을 쉬는 법.

바람에 흔들려 나뭇잎을 사각거리는 법.

하늘을 우러러보는 법.


그 모든 것을 잃었다.


피아노가 되어버린 나무는 보금자리도 잃었다. 피아노가 된 나무는 숲에 있을 자격을 잃어버렸다.

본인의 보금자리였던 숲을 벗어나,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박제된다.


나무의 새 보금자리에는 본인의 곁을 둘러싸던 빗물, 햇살, 바람은 그 어디에도 존재치 않는다.

오로지 사람들만이 피아노가 된 나무를 둘러싸고 있다.

사람이 나무였던 것 앞에 앉아, 피아노의 이빨이자 건반을 손가락으로 푹 찌른다.

연주자의 손가락에 맞춰 피아노는, 내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소리를 뿜어낸다.


피아노가 된 나무가 지금까지 내지 못했던 심정을 담아 목청 높인다.

피아노가 된 나무가 하늘을 향해 비명을 지른다.

그 나무의 비명 소리는 하늘에 닿지 못하고, 피아노가 된 나무 앞의 사람에게만 닿는다.

그리고 그 비명 소리는 사람에겐 아득히도 아름답게 다가올 뿐이다.

투박하고 볼품없던 나무가 우리의 손을 거쳐 이리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음에, 사람은 눈물을 흘린다.

이것이야 말로 나무의 참된 소리라 칭찬일색으로 일컫는다.






진정한 나무의 소리는,
숲 속에서 바람의 손길에 흔들리며 사각거리던 나뭇잎 소리이었을 텐데.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른다.
나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본 적이 없기에.





더는 세상 어디에도 나무의 소리를 기억하는 존재는 없다.

바람도, 나뭇잎도 잊어버린 한 존재 또한,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잊어버리기에.



나무가 사라지며, 푸르른 나무들이 살아 숨 쉬었던 숲 속에 숨소리는 사라졌다.

나무의 숨소리와 함께, 작은 동물들의 숨소리도 사라졌다.

나무의 숨소리가 사라진 숲은 푸르름을 잃어간다.


사라진 숨소리의 자리는, 사라진 푸르름의 자리는, 다른 존재가 꿰찼다.

피아노들의 비명소리가.


나무도,

나무가 사라진 숲도,

모든 것은 생기를 잃어간다.

그렇게 세상은 생기를 잃었다.

그리고 잃어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사람은 나무를 피아노로 만드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사람은 사람을 피아노로 만들었다.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하늘을 닮고, 하늘을 향해 자라고 싶었다. 날개는 없었지만, 하늘을 향하고자 했다.

하늘을 바라보며 자라난 사람이 한 명의 사람으로 완성되어 갈 때 즘, 세상은 그 사람을 가지치기한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기둥을 베어버린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끊어 버린다.

필요 없는 부분이라며 그의 잎사귀를 잡아 뜯는다. 품 속에서 키워내던 꿈들을 잡아 뜯는다.

모난 부분이라며 그 사람을 이루던 가지들을 잘라낸다. 몸에서 뻗어나간 특색을 부러뜨린다.


그 과정을 거쳐, 본연의 모습을 망각한 무언가가 탄생한다.

자신을 망각한 존재를, 세상이 원하는 형태로 다듬고, 어루만지고, 조각한다.

규격에 맞춰, 규칙에 맞춰, 규정에 맞춰, 조립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선호도에 알맞게 완성된 사람을 박제한다.

우리는 그렇게 박제된다.

우리는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대신 사람의 손짓에 따라 비명 지르는 방법만을 알게 된다.



사람의 손짓에 따라, 피아노가 된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다.

세상의 손짓에 따라, 박제가 된 우리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다.

그 소리는 하늘에 닿지 못하고, 땅에만 머무른다.

나무로 가득해야 할 세상은, 오로지 피아노들로만 가득 차고 있다.

세상의 모두가 숨을 쉬는 법을 망각하고, 비명 지르는 법을 알게 되었다.




숨 쉬는 방법을 잃어버린 세상은, 푸르름을 잃고 비명 소리로만 가득 차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비명 소리를 아찔하게 아름다운 소리로 듣는다.

그것이, 하늘에 닿고 싶었던 존재의 비명소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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