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얽매었던 사랑의 형태.
사슬은 서로가 서로에게 맞물려 있는 형태이다.
사슬은 두 대상을 이어준다.
그리고, 다른 한쪽을 얽맨다.
사랑은 사슬과 같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사슬일까.
두 사람을 이어주는 사슬일까.
아니면, 다른 한쪽을 얽매고 있는 사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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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는, 사랑을 빌미로 상대의 목을 옥죄고 있었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났다.
나이도, 성격도, 취미도. 무엇 하나도 같지 않은 둘이 만났다.
그 둘에게 같은 점이 하나 있다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서로를 이어주었다. 다르고, 또 다르지만 우리를 이어주는 그 마음은 마치 사슬이었다.
서로와 서로를 연결주는, 서로가 서로와 이어져 있는 사슬.
그 사슬은, 우리의 모든 부분이 다르지만 서로 이어져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가 서로 다른 곳에 있어도, 항상 붙어 있다고 말해주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 사슬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사랑이라는 사슬로 서로의 하루가 이어졌고, '각자'의 하루가 '우리'의 하루가 되었다.
우리의 매일은 그렇게 하루하루 이어졌다.
나는 그 매일이 끝나지 않는 매일이라고 믿었다.
그런 행복한 매일은, 이 모든 것이 환상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게 하였다.
그날도, 나에게는 평소와 같은 매일이었다.
평소처럼 상대와 매 순간을 함께 하고자 하는 그런 하루.
상대에게도 평소와 같은 하루였을 것이다.
평소처럼 한 줌의 숨을 간신히 쉬는 그런 하루.
그 하루의 기억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든 순간 모든 행동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그 순간을 주제로 한 영화를, 내 안의 영사기가 시도 때도 없이, 예고도 없이 상영한다.
지금 순간에도.
때마침, 영사기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순간을 비춘다.
그 영화의 첫 장면은, 다음의 말로 시작된다.
"너랑 있으면 누가 내 목을 꽉 움켜쥐듯이 숨 막혀서 죽을 것 같아."
상대가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자그마하게 말했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흔들리는 촛불 같은 목소리였지만, 어째선지 그 말이 내게는 깊숙이 각인되었다.
지금의 나는, 기억의 흔적을 담은 영화 장면 속, 상대의 얼굴에 담긴 감정을 읽어본다.
처절함. 간절함.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
처절함과 간절함에서, 상대의 진실한 속마음을 엿본다.
일말의 망설임에서, 얼마나 참아오다가 토해내듯이 뱉어낸 말일까, 를 절절히 느낀다.
아마 상대의 대사는, 침식되어 가는 와중에 마지막 한 모금의 숨으로 뱉어낸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영화 장면 속 상대의 심정에 마음이 비틀리듯 저려왔다.
하지만 나는 영화 속 상대 앞에 있는 인물이 아니다. 나는 관객이었다.
기억 속 공간에는 관객인 내가 아닌 배우가 서 있었다.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는 현재의 나와는 다른 존재가 서 있었다.
그것은 나였다. 과거의 나.
과거의 나이자, 그는 가장 소중한 사실을 망각했다.
사랑이란 상대와 나로 이루어지는 둘의 관계라는 걸.
그는 사랑이란 단어 안에 존재하는, '상대'와 '나'에서 '상대'를 잊어버렸다.
'상대'가 사라진 사랑에 남은 부분은 '나'뿐이기에, 오직 '나'의 마음에 충실했다.
그 존재는 상대의 첫 대사를 듣는 순간, 상황의 해결이 아닌 모면을 원했다.
이대로 우리가 끊어지지 않길 바라였다. 우리의 사슬이 지금처럼 이어지길 바라였다.
그는 믿고 싶었다. 우리 사이에 있는 것이 아직 사랑이라고.
그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필사적으로. 그리고 한편으론 구차할 정도로.
어떻게 해야 우리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을까. 금이 가기 시작한 우리의 빈틈을 메울 수 있을까.
그 생각만이 그의 안에 가득 찼다.
같은 영화를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해서 시청한 나는, 흘러가는 이 영화의 모든 흐름을 안다.
결말 또한.
이다음에 주인공이 내뱉을 그 말을 막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이 이야기의 결말을 보는 것. 이 영화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그리고 그 말을 평생 후회할 것.
영화의 주인공인 내가 또렷하게 말한다.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각인을 새긴다.
"날 사랑하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과거의 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에 그것이 정답이라는 듯이 적었다.
그리고 상대의 반응만을 기다렸다.
둘 사이에는 고요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지독하고도 지독한 침묵이 흘렀다.
상대는 자꾸만 입술을 깨물고 움찔거리기만 하며, 쉽사리 말을 뱉어내지 못했다.
한참을 깨물고 움찔거리길 반복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상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그러는 게 아니지."
그 말을 하는 상대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웃음이라기에는 서글퍼 보였다.
그 웃음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만큼은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여전히 알 수 없다.
같은 영화를 수십 수백 번을 돌려보아도 알 수 없었다. 앞으로 수천 번을 더 돌려 보아도 모를 것이다.
이미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먼 길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웃음의 의미는 깨닫지 못했지만, 과거의 나는 단 하나만큼은 깨달았다.
평생을 후회할 말을 내뱉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을 깨달은 순간도 이미 뒤늦은 후였다.
말은 이미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말은,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내가 다시 잡을 수 없는 속도로 사라져 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은, 우리 사이에 메꿀 수 없는 강이 되었다.
아무리 헤엄쳐도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거리의 강.
건널 수 없는 급류가 흐르는 강.
그이자 나는, 눈앞에 펼쳐진 강을 본 순간 알게 되었다.
우리 사이에 남아 있는 이것은, 더는 사랑이 아니라고.
행복한 매일은, 모두 본인 안에서 그려낸 환상에 불과했다.
내가 그려낸 환상에 취해 또 다른 환상을 그려내는 상황이었다.
사랑이라는 말을 빌미로, 상대가 내게 맞추어주기를 바라였다.
사랑은 그런 것이라고 포장했다.
그것이 그이자 나의 죄였다.
죄를 저지른 대가로 그는 벌을 받아야 했다.
그 죄의 이름은, 후회라는 벌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버린 것일까.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서부터 이렇게 흘러가 버린 것일까.
나는 너무 많은 걸 지나쳐 온 상태에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그날은 분명 평소와 같은 하루였다.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그리고 앞으로도 평소와 같은 하루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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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것은 나에게만 통용되는 법칙이었다.
나의 사랑은 사슬이었다.
상대가 느낀 나의 사랑은, 사슬이었다.
나는 상대의 목을 옥죄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사랑이라는 사슬로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내 목을 조르며, 목구멍 너머로 토해져 나오려는 그 말만은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모두에게 찾아올 수 있지만, 나에겐 오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던 그 순간을 선언하는 말을.
하지만 나는 사슬을 끊어내야 했다.
그리고 뱉어내야만 했다.
상대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했다면 해야만 하는 그 말을.
내 기억 속 흔적인 영화는 어느새 결말에 도달했다.
마지막 한 마디만이 남았다.
영화 속 주인공도 영화의 끝이 다가왔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그는 한참이나 영화의 마무리를 짓는 것을 망설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애쓴다고 하여도, 시간이란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존재였다.
결국, 그는 영화의 마지막을 매듭 짓는 대사를 말했다.
"미안해."
그이자 나는 그 뒤에 한마디 말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다음의 말은 삼켰다.
내게 그 말을 뱉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내뱉을 말은 갈 길을 잃은 채, 그이자 내 마음에 살아 숨 쉬는 채로 묻혔다.
그렇게 그이자 나는 평소와 같은 하루를 끊어냈다.
상대를 옭아매던 족쇄를 끊어냈다.
상대로부터 나를 끊어냈다.
'미안해'라는 말이, 내가 상대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내 과거의 한순간을 주제로 한 영화가 끝이 나고, 엔딩 크레딧이 흘러나온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관객인 나는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다.
영화의 결말은 내가 원하던 결말이 아니었으니.
원하지 않던 결말은, 내게 평생의 족쇄가 되었다.
족쇄가 된 사랑은, 후회라는 족쇄가 되어 여전히 내 목을 옥죄고 있다.
하지 못하게 된 말과 함께.
그날 하고 싶었던 말을 해본다.
미안해. 그다음에 하고자 했던 말을.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하지만 그 말이 전해질 일도, 내 입 밖으로 나올 일도 없다.
그것이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