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인생의 시험지다.
세상은 우리에게 문제를 낸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시험지 앞에 앉아, 세상이 낸 문제를 하나둘 풀어간다.
그렇다면, 세상이라는 문제의 정답과 오답은 무엇일까.
무엇으로 빈칸이 한가득인 시험지를 채워야 할까.
수험생인 우리는 그 답을 알지 못한다.
출제자는 '세상'이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답을 알고 싶어 한다.
우리는 서로의 답을 공유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본인과 다른 답을 적은 사람을 힐난하고 비판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걱정과 불안감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 결과. 본인의 답을 찾기 위해 시작했던 행동이,
어느새 '비교'만 하고 있는 상황이 된다.
그 장면은 절로 고개가 갸웃거릴 정도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시험은 우리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요구한다.
시험지를 마주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각자의 방식으로 시험지를 푼다.
우리는 각자가 생각하는 답들을 시험지에 적어 제출한다.
시험이 끝나고 답안지를 제출하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시험을 보고 자신이 제출한 답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
특히, 정답인지 확신이 없는 문제를 맞혀 보자 한다.
나 또한 그랬다.
학창 시절, 나는 하나의 시험이 끝나면 쉬는 시간에 애들을 불러 모아서 서로의 답을 확인했다.
나는 내 시험지를 들고선, 친구들과 한참이나 서로의 답을 비교했다.
긴가민가한 문제는 더 집요하게 물어보며.
친구들과 비교하는 상황에서, 나는 내 답이 다른 이들과 다르면 어쩌나 근심이 한가득이었다.
하나둘 답을 맞혀가며, 내 시험지는 틀렸다고 표시하는 문제들로 도배되었다.
늘어가는 표시들에 내 마음이 뒤흔들렸다.
몇몇은 내 시험지를 바라보며, 그 문제를 왜 틀리냐 조롱했다.
내 시험지와 친구들의 말들이 내 속을 휘저었고, 걱정만이 내 마음에 쌓여갔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의 정답 맞추기가 끝난 후,
나는 내 안의 찝찝했던 기분이 시원해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다음 시험을 보는 내내, 그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과 찝찝한 기분은 끊이지 않고 지속되었다.
나의 걱정은 모든 시험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나는 걱정 탓에 시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었고, 그날 시험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모든 시험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마음 한구석의 미묘한 감정이 다시 한번 요동쳤다.
시험을 대차게 말아먹고 밀려든 감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과 정답을 맞혀보는 행동은,
결국 무엇 하나 변화시키지 못했다.
시험지의 답도.
나의 마음도.
친구들과의 소통 속에서 자신의 답이 오답인지 정답인지를 비교하는 행위.
자신과 다른 이를 비교하는 행위는, 도리어 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 뿐이었다.
다른 이들과의 문제를 비교하는 상황에서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건,
불안감과 걱정, 그리고 조롱뿐이었다.
정답을 찾는 행위는, 내가 적은 답들을 바꿔주지 않았다.
도리어 불안감이 증폭되었고, 그 불안감이 내 다음 일을 하지 못하도록 신경을 마비시켰다.
다른 이들과 자신의 답을 비교하는 행동은, 결국 나를 좀먹는 행동일 뿐이었다.
세상이란 시험지를 맞닥뜨린 우리는 불안함과 걱정에 몸을 떤다.
본인의 다른 이들과 다를 경우의 상황.
본인의 답이 틀렸을 경우의 상황.
그 상황에 대한 걱정이 우리를 정신 차리지 못하도록 한다.
세상이라는 시험지를 풀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험지를 마주한 상태에서의 마음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
걱정한다고 바뀌는 것이 없다.
우리는 '걱정'이 아니라,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
걱정은 상상력이다.
일어난 일 혹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불안감이, 걱정이라는 상상력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
이 상상력은 걱정이라는 불에 장작을 던져주며, 걱정이란 불길의 몸을 키운다.
몸집이 비대해진 걱정은, 본인의 몸으로 사람을 불태워버린다.
걱정에 집어삼켜진 사람은, 본인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걱정'이라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상황이 아닌, '인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인지'를 통해 우리는 본인의 답을 바라볼 수 있으며, 본인의 답을 도출할 수 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인지'를 통해 본인의 답을 내렸지만,
본인의 답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본인의 답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탓에 본인의 답에 의구심을 품고, 그 답을 믿지 못한다.
본인의 답에 두려움을 느끼고, 타인의 답을 따라하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는 본인의 답이 타인과 다른 것에, 두려움에 빠질 필요도 의구심을 품을 필요도 없다.
타인과 답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세상이란 시험지에 정해진 답은 없다.
우리의 답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정확한 답은 모른다. 답은 오직 출제자만 안다.
세상이라는 답은, 세상이 냈다. 그에 대한 답은, 세상만이 안다.
사람인 우리는 알지 못한다.
사람의 의견은 다수의 표본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의견일 뿐, 사람은 출제자가 아니며 그것이 정답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의 답을 비교하고, 서로의 답이 틀렸다고 조롱한다.
본인의 답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며, 걱정에 빠져든다.
모두의 답은 다르다. 모두에게 주어진 시험지이자 세상이 다르기에.
그러기에 우리의 답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고, 그것에 부끄러워할 필요도 걱정에 빠져들 필요도 없다.
세상이란 미지수이며,
우리는 세상이란 시험지의 답을 모르기에 걱정을 하게 된다.
시험에 대한 두려움도, 답에 대한 걱정도 '미지'에 대한 두려움에서 온다.
세상이란 시험지를 풀기 위해 필요한 태도는 믿음이다.
세상이라는 시험지의 답은, 내 마음에 있다.
내가 적은 것이 곧 하나의 답이 된다.
자신의 답을 남과 비교하는,
자신의 답이 남들과 다름을 부끄러워하는,
자신의 답이 오답일까 두려워하는.
그 모든 행위는 무엇 하나 바꾸지 못한다.
오히려 나의 마음을 어지럽힐 뿐이다.
세상이란 시험지를 맞닥뜨린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하다.
시험지의 빈칸을, 그저 하나둘 자신의 답으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남들의 답이 아닌, 자신의 답을.
그렇게 묵묵히, 나아가면 된다.